산행일 : 12월 3일 금요일 맑음

 

     산행코스 :  비홍재-문덕봉(598m)-두바리봉-삿갓봉(629m)-고리봉(709m)-신기철교

 

     함께한 사람 : 단체 안내산행 소월 산악회

                 

     <산행 경로>

   

    남대전 i.c(08:28)-비홍재(10:34~36)-비홍산성(10:45)-356봉 아래 철탑(11:01)-문덕봉(11:37~45)

    -고정봉(12:10~15)-그럭재(12:30-32)-돌무덤(12:50)-삿갓봉전 안부에서 중식(30분)-삿갓봉(13:47)

    -고리봉(14:28~40)-천마리 장군묘(15:15)-신기철교 전 도로 (16:05~18:00)-남대전 i.c(20:00)

 

  오전 2시 퇴근후 지난해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는 정당하고 절박한 우리의 요구를

  외면하는 철도청과 마지막 파업의 배수진을 친 농성장의 동료와 합류후 협상타결의

  결과가 나온 새벽까지 추위에 떨다 귀가하니 먼동이 터온다.

 

   집에 도착후 아내에게 산행을 위해 도시락을 부탁하니 곱게 좀 미칠수 없냐며

  핀잔을 하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준다.

  평소에 가고싶어 점 찍어둔 산행지이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이 기회에 가야지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알수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나선 오늘의 산행지는

  전북의 5대 바위명산인 대둔산 장군봉 구봉산 고리봉 고정봉 의 핵심에 속한 산이다.

 

   부흥산맥이라 불리는 문덕봉(598m)-두바리봉-삿갓봉(629m)-고리봉(709m) 능선은

  주생면, 금지면, 대강면 등 남원시 3개면에 걸쳐 뻗어있는 산줄기로 문덕봉은

  설악산 공룡릉 혹은 용아릉 축소판으로, 고리봉은 골산(骨山)으로서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와 섬진강의 조망이 뛰어나다.

 

   대전을 떠난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대롱씩만(?) 털어내는 여유의 시간만을 허락하곤

  곧장 2시간만에 비홍재에 도착하여 등산인을 토해놓는다.

  성급한 선두의 등산인들은 비홍재의 안내 간판을 디카에 담는동안 벌써  

  숲속으로 사라저 버렸다.

 

                                                              산행지도

                                                   산행 들머리 비홍치 표고 250 m

 

   비홍재에서 10분정도 솔숲향이 싱그러운 된비알의 경사도를 헉헉 거리며 올라서면

   비홍산성의 입간판이 나오며 무너저 내려 흔적만 남아 있는 비홍산성터가 나온다.

   비홍산성의 유래를 알아 보았다.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 (동경 127"16' 북위 45도 24분)
□명 칭 : 내동리성, 합미성, 고성
□축 법 : 석축
□시 대 : 백제


남원으로부터 서쪽으로 10.5km 지점, 남원-순창간 국도 남쪽에있는 산(해발 375m)의 봉우리를

감은 포곡형 석축산성이다. 성의 서쪽에있는 비홍치는 남원서쪽의 관액으로 북쪽으로는

대산리 신계리 산성과 서로 맥을 이어서 남주히는 남원서곽 산맥에 있다.
조선보물도적조사자료 에는 鴻山城石築 約 500間, 우물 4곳, 으로로 기록되어있다.
남원지, 문화유적 총람에는 '고려말 직제학 양수생의 아내 이씨부인이 남편이 죽은후

시부모의 개가 권유를 물리치고 홀로지내다가 왜구 아지발도가 쳐들어 오자

재산을 보호하기위해 사재를 털어서 비홍치로부터 순창구미리에 이르기 까지 30리의 성을

쌓았는데 전쟁이 있을 때는 마을 양곡을 거두어 성안에 비장한데서 합미성 혹은

합민성 이라고 전해 내려온다고 하였다.
또한 남원지 기록에 의하면 또한 우물을 파니 감천이 솟아 쏟아져 뒷날 사람들이

그성을 가르켜 말하기를 고성, 홀에미성 이라하였다. 라고 적고있다.
현재는 비홍산정에 약400m가 남아있으며 20-30m씩 2개소가 무너져 있고 높이는

약 2.5m의 석축으로 주위 약 900m 내의 정적(우물자리)이 있으며 와편이 산재하여 있다.

 

 

 

   솔나무의 향그러운 오솔길을 걷다보니   새벽녁 추위에 하도 떨어 두꺼운 겨울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온 나는 비오듯 쏟아지는 육수로 인해  금방 무장해제 당하고 한커플의

  상의만을 걸친채 걷다보니 우뚝 솟은 문덕봉이 반긴다.

 

 

 

  전라남도 곡성군에 속한 문덕봉(598m)은 팔영산에서 성수산으로

  이어지던 호남정맥 줄기가 마령치에서 남쪽으로 치달아 묘복산과 남대문치,

  청룡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에 놓였다.

  문덕봉에서 고개를 쳐든 산줄기는 이후 삿갓봉과 고리봉을 일으켜 세운다.

  문덕봉 오름은 하얀 바위면 왼편으로 길이 나 있다.

  밧줄을 잡고 정상에 서면 나무도 없고 사방이 트여 조망이 끝내준다.

  멀리 강천산과 금지면의 넓은 평야 그리고 88고속국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덕봉에서 고리봉 가는길은 암릉의 세미클라이밍을 즐길수 있는 구간으로  암릉사이

  밧줄이 놓여있어 조심스레 내려서면 되고 그것도 겁이 나면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문덕봉 보다 조금 놓은 고정봉 정상은 평범한 육산으로 생각했는데 왠걸 내려서며

  뒤돌아보니 아래의 사진처럼 온통 바위투성이다.

 

                                        <뭐 같이 생겼나 ?>

 

  처음산행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암릉구간이 아니면 아래의 사진처럼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는 편안한 육산으로

  마치 양탄자 위를 걸어가듯 무릅 부담이 전혀없는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이다.

  이런 소나무 침엽수림은 피톤치드가 다량 배출됨으로 산림욕을 하기에는 그만이다.

  그래서인가 꼴딱 알밤을 까고 힘든 산행을 하고 있씀에도 갈수록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그럭재 까지 가는 동안의 암릉과 소나무의 조화로운 풍광>

 

 

 

 

         

          철탑 아래가 그럭재. 좌측 맨뒤의 희미하게 우뚝솟은게 고리봉 그리고

          그앞이 삿갓봉 우측이 두바리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용아릉을 연상시키는 암릉

 

  고리봉과 동악산은 섬진강으로 나뉘어 있지만, 두 산 사이의 강 7km 구간은

  솔곡 이란 골짜기 이름으로 불린다.

  솔이 소나무의 순우리말인 것으로 보아 솔곡은 소나무가 무성한 골짜기를 일컫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정말이지 환상적인 이런 솔숲의 오솔길은 흔치 않다.

  향적봉~적상산 종주시 보았던 적송의 아름드리 소나무는 아니지만 이런 솔숲의 오솔길은

  거창의 보해산 금귀산을 산행할때 보곤 처음 만나본다.

  개인적으로 난 이런 솔향이 솔솔 풍기는 오솔길 같은 이런 숲길이 정말 좋다....

 

                  <그간 걸어온 문덕봉 고정봉의 능선 모습>

                    

                      <철모르고 피어난 진짜 철없는 철쭉이 시들고 있다>

 

 

                          <구불구불 아름다운 섬진강의 모습이 정겹다>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의 이름은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시내를 관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놓았다는 것이다.

 

삿갓봉 정상은 소나무가 무성하여 조망이 좋지 못하고 조금 내려서면 뛰어난 조망을 제공한다.

삿갓봉을 한참 내려서면 고리봉 정상을 향해 갑자기 고도를 높이는 등산로는

흥건하다 못해 등줄기의 땀이 골을 내어 흐르는 품을 팔아야 오를수가 있다.

 

 고리봉 정상

 그런데 이게 웬걸 ?????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 이 높은 곳에 묘를 썻는지  얼마 안돼 보이는 정상 공터를 

 묘지가  차지하고  정상비는 한켠에 오두마니 서있다.

 완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올라서는 등산객마다 묘지 봉분에 올라서서 사방으로 툭 터진 조망을 감상하니

 묘를 이곳에 쓴 후손은 오히려 고인을 욕보이는 셈이다.

 

                      

                     <고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곡성의 동악산 능선들>

 

 

                                  <하산중에 올려다본 고리봉 정상>

 

 

            <뒤돌아본 걸어온 문덕봉에서 고리봉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는 능선>

 

 

   고리봉에서 남릉을 따르노라면 639m봉을 넘어서면서 묘 한 기를 만난다.

   봉분 가장자리를 콘크리트로 둘러쌓아 언뜻 몇 십 년 전 동네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묘로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이 묘는 400여 년 전 임진란 때 공을 세운 천만리장군을 모셔놓은

   유서 깊은 묘소로 전해지고 있다.

   천씨의 시조인 천만리 장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하여 참전한

   명나라 이여송 장군 휘하의 영양사와 총독장으로, 두 아들 상, 희와 함께, 군량수송과 보급에

   만전을 기해 평양과 곽산 등지에서 아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또다시  

   두 아들과 참전해 진산, 울산 등지에서 큰 전공을 세운 다음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귀화한 후 화산공, 충장공이란 시호를 받은 천 장군은 전투 중 전사하자 고리봉 기슭

   명당자리에 안장했다 전한다.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는 천만리장군 묘자리는 아들은

   없으나 많은 자손이 태어나는 '무자천손지지(無子千孫之地)'로 꼽는다

 

 

     소나무 숲길의 능선을 내려서다 보면 어느순간 탁 틔인 평야가 보이며

     하산지점인 신기철교가 내려다 보인다.

    

 

  오늘 산행거리가 대략 20 km인 점을 감안하면 모두들 준족답게 일찍 산행을 끝냈다.

  떠나기전 인원점검을 하니 2명이 빈다.

  귀로시간과 개인 산행능력을 감안하여 A코스와 B코스로 나뉘어 산행해줄것을

  산행전 고지 했슴에도 2명이 욕심만 앞세운 산행으로 모든이들을 2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만들더니 하산도 엉뚱한 곳으로 하는 바람에 시간외에 보너스로 짜증까지 선사후

  겨우겨우 어두워진 귀로에 들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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