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산청 웅석봉
산행일 : 2020년 3월28일(토)~29일(일) 1박2일
누구랑 : 초록잎새랑...
(트랭글에 그려진 실제 동선)
오전에 퇴근을 했다.
완전 밤을 세운건 아니나 이젠 예전같지 않은 몸이라 피곤이 남아 있다.
그러니 당연 이날엔 떠날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전날 저녁 출근할땐 초록잎새가 약간 몸이
아픈것 같다고 해 걱정하던 참였는데 퇴근해 오자마자
이젠 몸이 괜찮졌으니 오히려 먼저 어디든 떠나잔 말을 한다.
꼬렉~!
나야 대 환영이다.
집에서 점심 식사후 출발해 순식간에 밤머래재에 도착했다.
그만큼 주말임에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고속도로엔 차가 없었다.
이놈의 바이러스가 언제 끝날지 정말 걱정이다.
우야튼 좌우지당간에 우린 덕분에 빨리 도착해 코로나 걱정 없는 청정지역을 향한다.
초반부터 빡센 오름질...
얼마간 박베낭의 무게에 적응하기 까진 아주 느리게 걸어 올라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내 첫 헬기장을 넘긴다.
이후...
해 지기전 도착해야 하기에 능선길을 쉼없이 걸었다.
그렇게 걷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방금전 우리가 머물던 밤머리재가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한동안 능선길이 오름과 내림길로 우리의 체력을 테스트 하는 동안
그 힘듬을 위로한건 저멀리 보인 지리산 천왕봉의 자태였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지곡사로 향한 삼거리 왕재에 닿는다.
오늘은 왔던길 다시 되돌아 가기 싫어 지곡사 원점휘귀 코스를 생각 안해본건 아니지만
마눌님이나 나나 오늘 몸 컨디션이 그닥 좋은편이 아니라
좀 쉽게 오를 수 있는 밤머리재를 택했다.
그러고 보니...
지곡사 원점휘귀로 마눌과 단둘이
웅석봉을 찾았던건 거의 20년도 더 된 옛 일이다.
왕재를 뒤로 암릉의 능선에 올라선 후 몸을 뒤로 돌리자
이젠 아스라히 멀어져간 밤머리재 우측 뒷편엔 왕산과 필봉산이 뚜렷하게 잡히고...
진행방향 좌측으로 시선을 옮기자
지곡사와 산청 시가지 뒤로 우뚝 솟아오른 황매산이 조망된다.
이젠 정상까진 얼마 남지 않았다.
흐미~!
서울에서 왔다는 떼박꾼들로 그곳은 완전 야영장으로 변해 있었다.
정상의 데크가 그들을 다 수용하진 못할게 뻔하니 어쩌면 그건 우리에겐 행운이다.
드디어...
오후 5시30분을 넘겨 우린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산불감시원 퇴근 시간에 맞춰 잘 올라 왔다.
덕분에 정상은 오로지 우리들 차지다.
데크는 정상비를 두고 양편 두곳에 있는데 이곳은 지리산 조망과 일몰이 좋고.
반대편은 아침 일출이 좋다.
그래서 우린 어디에 ?
당연 일몰과 지리산 전망이 좋은곳이다.
도착해선 재빨리 보금자리를 구축한다.
그런후...
메인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마눌님이 준비한 눌린 돼지고기 한점을 안주로
새콤달콤 맛좋은 오미자 담금주 한잔에 몸을 덥힌다.
얼마후...
드디어 사골국물로 끓여낸 떡.만두국이 완성되자
우리 부부는 행복한 저녁식사를 끝냈다.
그런후...
이젠 좀 부족한듯 싶었던 酒님을 모시기 위해
피데기 오징어 한마리를 구워 오손도손 정담을 나눈다.
그러는 사이 오후부터 흐리기 시작한 날씨라
큰 기대는 안했지만 밖에 나가보니 역시나 언제 넘어 갔는지 모르게 일몰이 끝났다.
허무하게 끝난 석양은 그래도 여리디 여린 황혼의 잔영을 지리산 자락에 남겼는데
얄미운 구름 한자락이 우뚝 솟은 지리산 천왕봉을 희롱하고 있다.
해가 넘어가자
급속도로 땅거미가 밀려들고 산청의 도심엔 불빛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어느틈에 나왔는지 조각달과 샛별이 하늘을 지키는 사이
어둠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저 아래 헬기장에서 불러대는 떼창이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해저믄 소양강에서 부터 이어지던 노래들이 죄다 70-80 세대의 곡들이다.
ㅋㅋㅋ
한동안 정상을 서성대던 우리부부...
급속하게 떨어진 수온주로 인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보금자리를 찾아든 우리도 70-80의 음악을 들으며 길고 긴 밤을 시세운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
까무룩히 꺼저들어 가던 의식을 일깨운건...
ㅋㅋㅋ
숙취다.
난 酒님만 모셨다 하면 반드시 한밤중 물을 찾게 된다.
마셨으면 또 빼내야 하기에
단단히 옷 단도리를 한 후 멀리 보금자리를 벗어나
볼일을 끝낸 이후엔 한동안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보며 상념에 젖는다.
환갑이 지나 그런가 ?
다들 잘 하고 있으려니 해도 점점 더 자식들 앞날이 걱정된다.
"자식 새끼들 입 속으로 밥숟가락 들어간다."
"저기가 극락이다."
고은님의 짧은 싯구절인데
모든걸 함축한 단어 몇줄은 공감 백배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 앞날에 노심초사 하고 있슴을 그들은 알까 ?
시인 함민복은 이렇게 노래했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손가락 열개의 의미를 잊지 않았다면 열심히 잘 살거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 왔지만 역시나 그들도 그렇게 살아갈 거라 믿는다.
다음날 이른아침....
밖에 나서자 쉘터가 온통 하이얀 서리를 뒤집어 쓰고 있다.
다행히 우린 따스한 밤을 보내긴 했지만 간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간 듯 싶다.
아직 해가 뜨려면 더 기다려야 할 듯...
정상을 서성대며 바라본 지리산 자락엔 옅은 구름이 휘감고 있다.
추위에 잠깐 텐트에 들어갔다
다시 나온 순간 그새를 못 참고 햇님이 쏘옥~
솟아 올랐다.
여리디 여린 햇살이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기 시작하자
우린 비로소 하산을 준비한다.
아침은 따스한 커피와 함께 떡 한조각과 사과,바나나로 대신했다.
마눌님의 박베낭을 먼저 꾸려 놓고
이젠 젖은 쉘터와 텐트를 추슬리며 곁에서
나를 도와주던 초록잎새에게 별 생각없이 몇 마디를 건넸다.
그런데...
헐~!
순간 내가 말(?) 실수를 했다.
폴대를 간추리던 초록잎새가 순간 발끈했다.
글은 다시 고처 쓸 수 있지만 이미 쏟아낸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야이~ 나쁜놈아~!"
"씨이~!"
"나 먼저 갈테양~!"
ㅋㅋㅋ
토라진 마눌님이 떠나고 나홀로 부지런히
쉘터와 텐트를 추슬러 베낭을 꾸린 후에도 난 별 걱정을 안했다.
가다가 제풀에 풀리겠지 모~!
그리고 지가 뛰어야 벼룩이지 곧 따라 잡을꼬얌~!
그러니 태평스럽게 마지막 자릴 정리후 인증 사진까지 남기고
웅석봉에서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지리의 풍경까지 디카에 담은 후...
웅석봉을 뒤로 한채....
부지런히 마눌의 꽁지를 잡기위해 뛰기 시작했다.
헬기장을 넘겨 왕재에 도착할 쯤...
여기선 보여야 할 초록잎새가 안 보인다.
순간 들이닥친 불안감....
전화해도 안 받는다.
아직 안 풀어진 모양이다.
혹시 길을 잘 못 들었나 ?
다친건 아닐테지 ?
벼라별 불안감으로 가슴이 콩닥 콩닥...
그렇게 3키로를 온몸에 땀 범벅이 되어 따라 붙은 후
퍼뜩 깨닭은건...
마눌님의 체력을 너무 과소 평가한 반면
산찾사 체력도 이젠 다 됐구나란 현실을 그제서야 체감하고 실감 했다는 사실이다.
흐이구~!
초록잎새의 뒷모습을 보자 찾아든 안도감...
그제서야 아름다운 산하도 색감이 너무나 고운 진달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럴까 ?
물은 고요한 곳으로 흘러갈 때는 얌전하지만
협곡이나 폭포를 만나면 정말 겁날 정도로 무섭게 변한다.
그런면에서 사람은 물과 같다.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착해지고 차분해 진다.
내 앞에 말없이 터널터널 걷고 있는 여인...
참 착한 여인이다.
정말로 나에겐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인데
왜 자꾸 함부로 말을 하고 가벼이 대하게 되는지 ?
원인은 그놈의 말실수....
내 진심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실수를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지인에게 위로 한답시고 했던말이 본의 아니게
염장을 지르는 말이 된 것 처럼...
돌이 빵이 되고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건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 게 기적이다란 글을 어디서 본걸 기억한다.
그만큼 사람은 변하기 힘든 동물이란 말씀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
주뎅이 처 닫고 있어야지.
하긴...
나이들어 지갑은 열고 주뎅인 닫으라 했는데
하물며 난 빈지갑의 가난뱅이에 있어도 맘대로 못 여는 쫌생이가 아닌가 ?
이젠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모습도 살펴보며 차근차근 나아 가야 할 시점이다.
물이 깊어야 큰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띄우지 못한다.
이젠 나도 깊고 고요한 물이 가득한 마음을 준비해야 하겠다.
(동영상으로 보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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