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영남 알프스

산행일 : 2018년 10월23일(화)~24일(수)

누구랑 : 초록잎새랑

어떻게 : 지산리~영축산~신불산 야영~간월재~간월산~배내봉~배내고개



(트랭글에 그려진 동선)



출세라는 어원은 불교의 出世間(출세간)에서 유래된 말이다.

出(출)이란 한자를 보면 山위에 山이다.

그러니 글자 모양만 봐도 出世(출세)는 세속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 가는걸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허구헌날 산에만 드나들던 나는 이미 출세한 사람였다.

ㅋㅋㅋ

오늘도 우리 부부는 출세를 위해 함께 떠났다.

어디로~?

가을이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보고싶고 느껴보고 싶은 으악새 흩날리는 산정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영남 알프스라 했을지는 가 보면 안다.

예전엔 그곳을 가려면 참 힘들었다.

열차로 동대구로 이동하여 천일고속 버스로 갈아타고 통도사까지 가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KTX만 타면 울산역까지 1시간20분이면 도착한다.

이젠 그렇게 아주 쉽게 울산역에 도착한 우린 13번 시내버스로

신평 터미널까지 이동하여 지산리행 1번 마을버스로 환승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고 보니 지산리행 1번 마을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마을 버스는 매시각 20분 정각에 한번만 운행한다.




신평 터미널 옆엔 택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지산리 만남의 광장까지 얼마면 가냐 물어보니 사천냥만 달랜다.

오우 예~!

그정도면 아주 착한 가격이다.

쉽게쉽게 도착한 지산리에서 우린 산행을 준비한다.

이곳을 들머리로 찾아든게 우린 벌써 3번째다.




지산리에서 영축산을 오르는 등로는 솔숲 우거진 육산이다.

초반부터 완만한 육산이라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관절을 예열하기엔 아주 좋은 등로다.




숲속의 울창한 솔숲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소나무 사이로 활엽수종이 경쟁 하듯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가을빛이 곱게 내려앉은

활엽수의 단풍에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참 멋드러진 풍광이다.

지산리에서 이어진 솔숲 오솔길이

이렇게 좋다보니 우린 매번 영남이네 집을 올땐 이길을 찾게된다.




어느덧....

완만하던 등로가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그 가파른 오름질은 꼬부랑길 임도와 수차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린 취서산장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발아래 드리운 멋진 조망터의

취서산장에선 우리부부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게 있다.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초록잎새가 박베낭을 내려놓자 마자 쏜살같이 점방 쥔장을 찾는다.




내가 그토록 기다린게 뭘까 ?

햐~!

니들이 이맛을 알아~?

ㅋㅋㅋ

정말 지긴다.

한모금의 캔맥주에 오장육부가 다 시원해 진다.

그런데...

한캔에 오천냥은 좀 비싸다.




언양 시내를 내려다 보며 마시는 맥주는 그간의 피로를 한번에 날려 버린다.




취서산장에서 마신 맥주의 힘이 우릴 정상으로 이끈다.

영축산 정상을 앞둔 안부에선 등짐을 내려놓고 조망에 빠진다.

발아래 통도사 사찰 건너편엔 정족산과 원효산이 가깝다.




실컨 쉬었으니 다시 힘을 내 발걸음을 옮긴다.

이젠 저 암봉만 휘돌아 나가면 영축산이 지척의 거리다.




걷자 마자 또 멋진 조망터에 발이 묶였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을 잇는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잠시후 우린 저길을 걸어가게 될 거다.




드디어 올라선 영축산 정상.

그냥 갈 순 없다.

바위에 디카를 올려 겨우 인증사진을 얻은 우린




점점 해가 짧아진 한낮을 생각해 갈길을 서둔다.

영축산을 내려서는 초록잎새 앞으로 시살등을 향한 능선이 멋스럽다.




영축산의 암봉을 내려서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자

억새평원을 넘겨 저멀리 재약산 수미봉과 천황산 사자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선등하는 초록잎새의 발걸음이 이젠 탄력을 받았나 ?

사진 몇장 찍는 사이 억새 사이로 숨어 버렸다.

그간 빌빌대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니 참으로 별일이다.

문득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보니 저멀리 방금전 서있던 영축산 정상비가 외롭다.

 



계속되는 억새평원이

장관이라 걷는 발걸음엔 점점 더 흥이 실린다.




진행방향 우측의 단애절벽 사이로

문득문득 언양 시내가 보이던 등로를 따라 우린 다정하게 걸었다.




평일의 늦은 오후라 그런가 ?

그 넓은 억새평원엔 오직 우리뿐...

이런 한가로움이 참 좋다.




억새는 한줌의 바람에도 반응한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의 군무가 황홀하다.

그럴때 마다 가슴이 먹먹해짐은 왜일까 ?

 



이런길은 마냥 걸어도 좋다.

우리 부부는 박베낭의 무게도 잊혀질 만큼 가을의 정취에 빠저든다.




이곳이 바로 別有天地(별유천지) 非人間(비인간)의 풍경이다.

이런 아름다운 산하 깊숙히 들어 앉으니 이게 바로 出世(출세)다.

出世(출세)를 하고보니 그간 세속의 삶이 너무나 초라하여 회한이 밀려온다.




年月日時(연월일시) 旣有定(기유정)인데

浮生(부생)이 空自忙(공자망)이란 말이 있다.

태어난 사주팔자는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들이

그것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게 뛰어다닌다는 말이다.

 



천상병 시인도 그랬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소풍 나온것 이라고...

인생 뭐~ 별거 아니다.

그러니 아웅다웅 살아야 하는 세속의 출세길에서 벗어나

가끔은 진정한 出世출세(?)의 길을 걸어봄이 인간답게 사는길이 아니겠나 ?




어느덧 발걸음이 신불재로 향한다.




신불재에 도착해선 물주머니를 들고 샘터를 향했다.

가천리로 내려서면 산장 바로옆 계곡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다.

그러나 수량은 예전만 못하다.

마치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사내처럼 샘물은 질질댄다.

이런 현상도 다 자연훼손의 영향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이런 생명수가 마르지 않음이 참 다행스럽다.

사실 영남 알프스 산행은 햇살을 등지고 산행해야 제대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가 진행한 방향의 반대로 코스를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걸어야 했던건 박베낭에서

제일 많은 무게를 차지한 물 때문에 그랬다.

가볍게 올라 마지막에 가득 물을 채울 수 있는 신불재 샘터는 그래서 참 소중하다.




신불산을 향하다 보니 여윈 햇살이 느껴진다.

곧 땅거미가 내려앉을 기세다.

이럴줄 알았다면 대전에서 좀 일찍 떠날걸 이란 후회가 밀려든다.




난 예전의 체력만 생각했다.

전 같았슴 그렇게 떠났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생각없이 나홀로 걷다 되돌아 보면 초록잎새가 보이지 않는다.

선두에서 이끌던 내 똥꼬를 쑤실듯 바싹 따라붙던 예전의 마눌님은 어디로 갔는지 ?




그래도 부득부득 힘겹게 따라오는 아내가 대견하고 고맙다.

초록잎새는 한때 낙석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 앞날을 기약할 수 없던 몸였다.

그일 이후 체력이 급전직하 떨어진 이후 회복은 했으나

이젠 예전과 확연히 다름을 오늘 또 느끼게 된다.




드디어...

신불산 정상이 코앞이다.

되돌아 내려보니 그간 걸어온 능선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름답다.

알프스란 이름이 붙을만 하다.




항상 우린 영남이네 집을 오면

간월재를 넘겨 간월공룡 능선 초입의 데크에서 야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다.




얼른 신불산 정상 인증사진 한장을 남긴 우린...




곧바로 신불산 정상아래의 데크에 보금자리를 펼쳤다.

능선넘어 반대편 데크엔 텐트 두동이 이미 들어서 있다.

정신없이 우리들의 보금자리 칠성급 호텔을 짖고 있는데 초록잎새가 그런다.


"저녁노을이 참 이뻐요~!"


하던일을 멈추고 후딱 디카를 찾아들고 뛰어가 노을을 담는 동안

무엇이 그리 급한지 햇님은 구름 속으로 고단한 하루를 한순간에 마감한다.




신불산 정상에서의 한밤...

마눌님이 준비한 식단은 조촐했다.

집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 싸와도 편안한 사이라 좋고

평범한 음식이라도 산에만 들면 황제밥상 부럽지 않은 요술을 부리니 개의치 않다.

메뉴는 얼마전 길바닥에 널려있던 도토리를 한봉지 주워 만든 묵이다.

육수만 우려내 도토리 묵에 붓고 집에서 싸온 찬밥을 넣으면

아주 훌륭한 도토리 묵밥이다.

굳이 남의 살이 아니더라도 이런게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든다.




산중의 밤은 싸늘하다.

생각보다 더 춥다.

그래 그런지 마눌님은 밖으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




구슬리고 어르고...

나중엔 협박(?)에 승질까지 부려대자

ㅋㅋㅋ

온몸을 옷으로 무장한채 밖으로 나온 초록잎새가 탄성을 내지른다.




오늘은 굳이 이맛불을 밝히지 않아도 좋을만큼 보름달이 산정을 환히 비추고




정상을 넘겨 시내의 야경마저 황홀한 한밤이다. 




우리 반대편 데크엔 뒤늦게 도착하여

잠시 우리쪽을 서성대던 젊은 친구들이 그쪽에 둥지를 틀어

텐트는 두동에서 세동으로 늘어났는데 그 친구들은 이제사 저녁 만찬을 즐기고 있다.




아름다운 야경에 취하다 보니 몸이 얼어 붙었다.




추위에 굴복한 마눌님이 텐트로 몸을 옮긴 이후에도

정상을 하염없이 서성대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 보금자리에 들자

신불산 정상의 밤은 고요속에 깊어만 간다.





다음날 이른 아침....

지난밤엔 바람이 다소 거칠었다.

그래 그런지 자다깨다를 반복 했는데 이른 새벽에야 고요가 찾아들었다.

그순간 깜박 깊은잠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텐트에 스며든 여린 햇살에 정신없이 뛰어나가 보니

오우~!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출은 장엄했고....

그리고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깊이 잠든 초록잎새를 일으켜 세우기엔 이미 늦었다.




신불산 정상의 일출이 그렇게 막을 내리지 마자

햐~!

강력한 햇살이 우리의 보금자리를 내리쬔다.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기며 해찰을 떨다

구수한 누룽지로 아침을 해결한 우린 주위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젠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추억속 한페이지를 장식한 신불산을 등진다.




저 능선만 넘기면 바로 간월재다.




걷다가 되돌아 보면 그간 죽어있던 억새들이

일시에 되살아나 하이얀 소금을 뿌려 놓은듯 아기 햇살에 나부낀다.

이러니 역시 억새 산행은 역광 산행이 맞다.

어느덧 저멀리엔 하룻밤 우리를 말없이 품어주던 신불산이 아련하다.




간월재를 향한 능선엔 죄다 계단이 깔렸다.

이젠 예전보다 훨 수월한 등로다.




능선 중턱에 자리한 조망데크....

솔직히 저곳에서 하룻밤을 지세우고 싶었다.




이미 특급 숙박지로 알려진 곳이라

평일임에도 꽉 들어찰 거란 짐작대로 백패커 한분이 짐을 정리하고 계셨다.

지난밤 몇동이 함께 밤을 보냈냐 물어보니 의외다.

홀로 였단다.

그럼 우리도 여기까지 올걸 그랬나 ?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간월재가 고요속에 뭍혀있다.




도착한 간월재의 화장실을 찾아들어 몸을 가볍게 만든 탓에




간월산을 향한 오름질은 다소 수월했다.




매번 올때마다 묵었던 간월 공룡능선에서 한차레 다리쉼을 한 이후엔




우린 쉬지 않고 걸어 간월산 정상에 선다.

이곳을 찾은지도 오래된 듯....

초록잎새는 우람한 정상 빗돌을 의아해 한다.




이제부턴 억새의 향연은 볼 수 없는 숲속길을 걷는다.

배내봉을 향한 능선길 한가운데 누구든 한번쯤 걸터 앉아보던

소나무 가지에서 우리도 엉덩이를 잠시 의탁하여 힘을 비축한 우리 부부는




다시 또 길을 재촉한다.




내 뒤를 힘겹게 따라오는

초록잎새 뒤론 재약산과 천황산이 선명하다.

예전에 우리부부는 야영한 다음날엔 저 사자평 억새평원을 넘겨 표충사로 하산을 하던가

가지산 운문산을 거처 억산에서 석골사로 하산을 했었다.

몇년전 나홀로 산행 했을땐 가지산을 넘겨 상운산에서 석남사로 내려왔는데

솔직히 이번엔 최소한 능동산을 거처 힘에 부치면 도중 석남고개에서

교통편이 자주 있는 석남사로 내려설 생각였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나의 욕심일뿐...

초록잎새의 체력으론 힘에 부친다.

이게 다 힘겨운 세월의 무게인지 예전의 체력이 부럽다.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한차레 간식을 들며 오늘 그렇게 걸어보려 했다고 하자

초록잎새가 그런다.

날 아주 죽일려고 햇고만....





이젠 우리들의 종착역에 이른다.

배내봉을 넘기면 오늘 산행은 끝이다.

마침 지나가던 산객에게 요청하여 배내봉 정상비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우린




가지산과 상운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고개를 넘겨




오두산으로 향한 갈림길을 지나치자 배내고개가 지척의 거리로 좁혀진다.




내래 백히던 가파른 원목계단이 안정을 찾을쯤

현란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단풍나무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어느덧 가을색은 벌써 설악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앉았나 보다.




드디어 배내고개에 도착한 우린 산행을 끝냈다.

이젠 버스를 타고 울산역으로 나가면 된다.

다행히 많은 기다림 없이 우린 울산역까지 갈 수 있는 328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예전엔 꽉찬 1박2일의 여정이나

문명의 편리함 덕에 이웃집 드나들듯 KTX덕에

오후 조금 넘긴 시각임에도 우린 1박2일의 백패킹을 마무리 했다.

뭐든지 혼자하면 기억이고 둘이 하면 추억이라 그랬다.

홀로 떠난 백패킹도 좋지만 이렇게 마눌님과 함께 하는 백패킹이

그래서 난 참 좋다.

세월이 흐를 수록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이 아쉽긴 하나

그래도 할 수 있을때 까지 우리 부부는 이런 산행을 이어갈 것이다.

이것도 욕심일까 ?

그럼 어떠리....

진정 出世(출세)를 향한

우리부부의 발걸음은 무조건 죽을때 까지 Go~!!!!


산에서 건강을......(산찾사.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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