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 병마산

어느날 : 2017년 5월22일 월요일

누구랑 : 초록잎새랑...

 

 

몇일전이 아버님 기일였다.

근무일정 때문에 제사에 참석하지 못 한 난

그날 이후부터 왠지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서....

그저 내 마음 하나 편해보자 떠난 길이다.

내고향 시골을 향한길은 쭉쭉 뻗은 세종시를  외면하고

우린 예전 시골을 다니러 갈때의 그길...

구불 구불 옛길을 이용했다.

신탄진~매포~부강을 거처 중봉리에서 방향을 틀어 이름도 촌스런 

정중리 1구 수작골에 도착할 동안 주위의 풍경들이 많이 변한게 확인된다.

세월은 벌써 그렇게 흘렀나 보다.

 

병마산 입구...

그곳을 휘돌아 나가는 조천의 물길을 보로 막아

수로에 물을 끌여들여 정중리 1구의 들녁을 기름지게 만들던 회다리도

예전 모습이 아니고 수로였던 보또랑도 이젠 볼 수 없지만 분명 이곳은 내 고향땅이 맞다.

이젠 그 맑던 물도 오염되고 그 넓던 백사장은 잡풀로 뒤덮인 모습이라 낮설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이곳은 잊을 수 없는

내 유년의 꿈이 서린 고향이라 그런지 어릴적 하루종일 꼴록새의 알을 줍느랴

백사장 모레밭과 돌밭을 헤메던 어린시절이 문득 그리워 진다.

어제는 그때 그시절 하루종일 붙어 다니며 무던히도 싸우고 지지고 볶던

붕알친구 한수가 안부 전화를 해 온 터라 그때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 올려저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든다.

 

 

 

회다리 건너편 병마산 입구의 공터에

앙증맞은 마눌님의 차를 주차 시켜 놓은 다음 우린 숲속을 향한다.

 

 

 

울울창창 숲속길...

병마산을 향한 길은 언제 부턴가 소로길이 이렇게 대로가 되어 있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시작된 흙길을 즈려 밟고 올라선지 얼마쯤...

 

 

 

살기 바쁜 형제들이 제때 찾아보지 못함이 그대로 들어난 묘소에 도착을 했다.

예전 우리 아버님은 할아버지 묘소를 매일 같이 들려

잡초를 뽑고 관리를 하여 인근에서 제일 호화로운 묘소를 유지 하셨는데

효자 부모에게 효자 아들이 나온다는 말도 이젠 다 틀린 말인 듯 우리는 그렇게 못 해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잔디 보다는 잡풀이 더 무성한

봉분을 맨손으로 어느정도 다듬은 다음 우린 젯상을 차려 절을 올렸다.

살아생전 그렇게 좋아 하시던 약주를 듬뿍 따라 드리며

우린 어떻게 살아도 좋으나 당신 손자들 만큼은 잘 좀 살펴 달라는 나의 청을 듣던 마눌님이 그런다.

 

"뭘 바래~?"

"아무것도 바라지 마세요~!"

"당신은 아버님께 용서만 구하세요~"

 

순간...

가슴이 뜨끔하다.

맞는 말이다.

나도 참~ 염치도 없지....

 

그 옛날...

돌아가시기 얼마전 들린 시골집에서

홀로 기거를 하시는게 안쓰러워 대전에 가서

우리와 함께 살자던 둘째 며느리의 청을 그때 아버님은 한사코 거절 하셨다.

그런 아버님을 두고 돌아 나오던 등 뒤에서 하염없이 우릴 처다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왜그리 처량맞아 보이고 쓸쓸해 보이던지 그날 백밀러에 비처진

아버지의 그 모습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였다.

 

그때...

억지라도 모셔 왔어야 했다.

가슴을 치고 후회한들 이젠 아무 소용이 없기에 더 후회가 밀려든다.

그렇게 가시게 두는게 아녔는데...

사는 동안 항상 우리 마눌님을 제일 이뻐 하시고

우리 마눌님도 친정 아버지보다 더 좋아하던 시아버지 였기에 초록잎새는 회한이 많은 며느리다.

살아가는 동안 항상 죄스러움을 남기게 만들고 세상을 버린 아버님이 그래서 한편 원망 스럽다.

 

 

 

뙤약볕에 한동안 앉아 회상에 젖어 있던 우린 자리를 정리 했다.

그런후...

온김에 이곳 병마산 정상을 거닐어 보기로 한다.

 

 

 

선산인 이곳 병마산 정상은 묘소에서 불과 몇분이면 도착이다.

 

 

 

병마산의 정기와 맑은 상봉천으로 시작하는

나의 모교인 국민학교 교가에 나오던 산이 바로 이곳인데

병마산엔 아래와 같은 전설을 품고 있다.

 

 

 

정상엔 산불감시 초소와 정자가 있다.

 

 

 

정상에서 내려 보이는 풍광...

 ktx 오송 철도역과 생명과학 단지로 개발되는 오송 택지가 지척이다.

 

 

 

이왕 온김에 그곳으로 향한 등로를 걸어보기한 우리가 걸음을 옮겼다.

 

 

 

 

 

등로가 임도수준으로 아주 넓다.

예전 어릴적 나무하러 숱하게 오르 내리던 내고향의 뒷산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길이 어떻게 변했고 어디까지 이어질까 ?

 

 

 

이쯤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내리면 내 고향집 뒷곁으로 내려 서는데...

 

 

 

그냥 곧장 이어진 우거진 숲속길을 더 걸었다.

그래서 확인한건

우리집의 뒷산 넘어 쪽쪽골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옛날 안골 동네였던 오송지구의 생명과학단지 부지와 연결 되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젠 왔던길을 그대로 되돌아 걷다

예전 내집으로 향한 등로를 찾아 걸어 내렸다.

 

 

 

그래서 오랫만에 들려본 내고향 내집...

이젠 누가 살고 있을까 ?

모습은 내 고향집이 맞는데 왠지 낮설다.

화초를 유난히 좋아하여 꽃으로 가득하던 화단엔

푸성귀가 대신하고 얕으막 하던 담장은 허물어져 보이지 않는다.

탱자로 이어진 담장의 울타리도 없어진지 오래 된 듯하고

예전 우물가는 메워지고 그옆에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맺었던 자두나무도 베어지고 없다.

 

 

 

 

내고향....

세종시가 들어서며 인근 주위가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땅값에

내고향 사람들은 다들 땅을 팔아 타지로 떠나 고향땅엔 죄다 외지인 뿐이라

이젠 낮설은 타향보다 더 타향같은 고향이 되었다.

쓸쓸한 마음을 안고 고향집을 돌아 나온 우린 병마산을 다시 찾아든다.

 

 

 

그렇게 걸어가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 마눌님이 묻는다.

 

"저기 진숙이네 집은 언제 없어 졌나요~?"

"몰러~!"

"어느날 보니 그자리에 절 하나가 들어 섰더라고...."

 

 

 

선친의 묘소만 아님

다시 찾고 싶지 않을 만큼 변모해진 고향땅이 왠지 싫다.

돈이 뭔지 ?

흐이구~!!!

고향땅을 팔고 떠난 사람들이나 그저 살림살이 펴지고

행복하게 사시기만을 기원하며 반야심경이나 한번 음미하며 졸필을 끝낸다.

 

-반야심경-

모든사물은 空이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고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의 다함 까지도 없느니라.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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