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화천 만산동 계곡과 비래암
어느날 : 2008년 11월 08일-09일 (토.일)
누구랑 : 초록잎새. 산찾사. 처남.
군대간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았다.
첫 면회를 가는 날 이것 저것 준비하는 아내가
설레임에 들떠 있는거와 반대로 난 완죤 짜증과 귀찮니즘에 쩔어있다.
마눌의 말처럼
나의 인간성이 엿보이나 어쩔수 없는 태생이 그런걸 으떻하나....
글구
요즘 군대가 군대인가 ?
하긴 나약해 빠진 요즘애들 가둬 놓는 그 자체가
그네들에겐 고역이고 고통이라 지만 그래도 난 역시 못마땅하다.
아들이 자대배치 받던날
전화한통을 받았는데 울 아들 이름을 대면서
관계를 묻길래 내가 애비다 그랬더니 본인은 대대장이란다.
처음에 난
군대간 부모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보이스 피씽인줄 알았다.
옛날 같은면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냐 말이다.
대대장이 할일 드럽게 없나보다 사병부모에게 전화를 다하고..
니놈이 대대장이면 난 사단장이다 요놈아 속으로 생각하며 퉁명스럽게
그런데요 뭔일입니까 대답을 하니 말씀의 요지인 즉 귀한 당신 아들 잘 데리고 있다
이모습 그대로 그대 품에 돌려 들릴테니 걱정 붙들어 메란다..
그러면서 울 아들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슴
아마 대대장 나한티 욕 한바가지 먹었을거다.
야이~ 사기꾼놈아 라며 소릴 지르려는 순간 귀에 익은 아들넘이 아빠를 부른다.
흐미~!!
진짜루 대대장일쎄~!!
참말루 세상 많이 변했다.
변해두 억수로 변해 벼렸는데 난 왜그리 껄쩍지근한지 도통 모르겟다.
아들넘과 몇마디 대화후 바꿔준 대대장님께 특별부탁을 했다.
그노무시키 고생 좀 왕창 시켜 달라구...
내 부탁을 성실히 이행하나 볼겸
군부대를 찾아가는날 큰 처남도 따라 붙었다.
대전에서 춘천을 거처 화천을 가는 장거리를 가면서
아들넘 군대를 한방에 찾아내 들어서는 나를 보며 아내는 여전히 의문이다.
도대체 몇번을 가본 시가지의 건물을 찾을라 치면 그렇게 헤메는 당신이 우찌 처음 와 보는
요런 덴 항상 귀신처럼 기가 막히게 잘도 찾아 오는지 알수가 없단다.
글씨~?
그건 진짜루 나두 나를 모르것넹~!!
면회 신청을 하고 잠시 후
아들넘이 정문을 향해 내려온다.
위병소에서 방문자 신상 명세를 적은후 군 부대를 직접 들어가
우리 아들 선임병이 안내하는 대로 내무반과 아들이 근무하는 행정반까지
두루 견학을 한 후 인사계와 면담을 하는데 자대 배치받아 온놈 중에
요렇케 적응 잘 하는놈 처음본다며 별 걱정 하지 마란다.
뭔 걱정 ???
인사계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요즘 군대가 참으로 한심하단 생각이 드는건 나 만의 생각인지 ?
변해도 참으로 많이도 변한건 군대의 초 근대화 시설 보다도 의식구조의 놀라운 변화다.
요즘엔 군대생활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고가 많으니
가끔씩 부대에서 부모와 대화를 통해 군생활 하는 애들의 신상과 심리체크를 하고 있다며
혹 부대전화를 받더라도 별일은 아니니 놀라지 마란다.
우야튼
아들넘 데리고 1박2일 외박이 허용된다.
이제 겨우 3개월밖에 안된놈이 외박을 나올수 있다니
옛날 우리 군시절과 비교되며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아들놈을 데리고
전날 미리 예약을 한 화천의 만산동 계곡
깊숙히 자리한 산꾼의 집이란 민박집을 찾아 들자
아담한 전원주택의 펜션건물이 아름다운 민박집 여쥔장이 달려들며
환한 미소와 친절로 우릴 맞아준다.
정해진 숙소에 짐을 풀자
부지런히 아내가 쌀을 씻어 안치고 밥을 짓는 동안
정원에 자리를 잡아 주인집 아주머니가 피어준 숯불에 고기를 구우며 좀 늦은 점심을 준비한다.
금방 차려낸 정원의 만찬이 그만하면 화려하다.
마눌이 아들의 손을 잡으며
엄마 보고 싶었찌이~? 다정하게 묻자 넉살좋은 아들넘 대답이 걸작이다.
"아니지 엄마"
"엄마보다 이넘의 이슬이가 을매나 보고잡던지 눈물이 다 나데.."
아마도 그말이 진심일지도 모른다.
식성이 나를 하나도 닮지 않고 우리 아버지를 닮은 아들은 술이 고래다.
예전 우리 아버님은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다만 과묵하신 아버님의 말씀이 약간 느는 정도가 다다.
그런 아버님을 닮은 아들녀석은 이슬이 5병을 쓰러트러야 기본이니 나는 할말이 없다.
그런 아들넘과 대적하단 내가 아마 제명에 못 살것 같아
처남에게 아들넘을 넘기고 편하게 마시라 자리를 비켜주니 순식간에 이슬이가 자빠지고
마눌은 지 좋아하는 뚱땡이(피티병 맥주)를 쓰러트린다.
(처남과 아들 그리고 초록잎새)
배를 불리고 나자 할일이 없다.
술도 깰겸 가깝고 경치좋은 산행지를
알아 놨다 함께 가자 하니 모두들 얼굴에 불만 투성이다.
마눌이야 나와 함께 산을 오르고 싶어도 아들이 싫어하니 아들편이다.
이노무 시키가
이젠 대가리 컷다구 지맘대로다.
눈을 부라리고 대갈통을 한방 갈겨두 꿈쩍두 않는다.
워째 숙소를 이런 산골짝에다 잡았냐는 둥 아들입장을 생각해서
최소한 인터넷이 되는곳은 잡었어야 되지 않는냐는 둥 불만을 슬슬 들어낸다.
이거 도대체
아비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
아니 아예 땅에 떨어진지 오랜 것 같다.
이놈이 군대를 가더니 이젠 그렇게 무서워 하던 아빠가
우습게 생각될만큼 커진건 간덩이 뿐인가 보다.
그놈 워째 군대 잘못 보낸것 같다.
ㅋㅋㅋㅋ
예전 우리 아버님은 권위가 추상같았다.
어려서부터 성장해 어른이 될때까지 아버님한텐
매 한번 맞아보지 않았는데도 나는 아버님이 그렇게도 어려웠다.
잘못한게 있으면
과묵하신 우리 아버님은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나를 제압했다.
혼찌검 내실때의 눈빛은 그야말로 눈에 불이 날것 같이 뜨겁다가도
부드럽게 처다보실땐 한없이 온화한 눈빛이 되시던 아버님의 그 권위는 어떻게 생겨난건지 ?
한때
나의 아버님처럼 나도 울 아들을 매 한번 대지 않고
다스려 보려 했는데 그게 도대체 먹힐질 않아 지금 우리 큰아들은
무수히 많이도 맞고 자랐다.
이젠 대가리 컷다고 이넘이 술 먹으며 옛날 아빠한테 맞은때를 얘기하며
웃을 만큼 자랐는데 그래 그런지 부자지간의 대화가 마음과 같지 않게 자주 단절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내와는 아주 소통이 자유스럽다.
아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의식들이
벽이 되어 가로막는데 아내는 그런게 다 용인 되는게 나로썬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게 다 세대차이라 하는데 그렇담 나와 아들은 물론이고 아내와도 나는 세대차이가 있단 말인가 ???
(숙소에서 내다본 정원)
오후의 시간을 자연의 숲속을 거닐며
부모자식간 정을 나누며 거닐고 싶은 소망은
무참히 깨저 버리고 각자 소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로 합의를 했다.
처남과 아들은 화천읍내로 나가 pc방으로 노래방으로
그리고 당구장을 찾아 간다며 길을 나서는데 나를 따라 산에 오를거라
내심 기대했던 마눌도 나를 버리고 아들의 꽁무니를 쭐레쭐레 따라 시내로 나선다.
그래 가거라
나홀로 숲속에 들어
맑은 공기 듬뿍 마시며 신선처럼 거닐다 오련다.
그래도 절대 서운한거 없다 요넘들아 마음속으로 외치며 만산동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비래암 개념도)
산꾼의집을 떠나
만산동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계곡을 낀 임도가 늦가을의 정취를 담뿍 담고 나들이 나온 객을 반긴다.
추색짙은
만산동 계곡이 차암 아름답다.
이런곳을 놔두고 도심을 찾아드는 아들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
하긴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이니 이런것에 관심을 두기보단 쾌락의 주위환경에 혹하는게 당연할 거다.
(산행들머리 안내문)
구운리에서 만산동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진행방향 우측의 능선에 그냥 봐도 예사롭지 않는 커다란 암릉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서 날라왔다 하여 비래암이란 불린다는 이곳은
또다른 이름이 있는데 비녀를 꽂은 여자의 머리 같다하여 비녀바위,
바위가 거무스럼해 지면 비가 온다하여 변화바위,병풍같다 하여 병풍바위라고도 불린다.
(오름길에 바라본 비래바위)
오후 3시가 되어 시작된 산행이라
산행들머리에 설치된 안내도의 행로대로 짧게 원점휘귀 산행을 하기로 한다.
산행들머리는 이미 추수가 끝난 참께밭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허수아비를 향하며 시작된다.
이곳 화천이 죄다
군 부대 지역이라 그런지
이놈의 허수아비도 철모를 뒤집어 쓰고 있다.
다만 입고 있는 옷과 철모는 알록달록 군복이 아닌 흰색이다.
저놈의 허수아비는 의무병인가 ?
(추수를 끝낸 참께밭의 허수아비)
참께밭을 지나 숲속에 들자
쭉쭉 뻗은 낙엽송이 꽉 들어찬 숲 사이로 오솔길이 능선을 향한다.
완만한 경사를 유지한 등로에 푹신한 낙엽을 즈려밟고 올라선 안부에서
진행방향 좌측으로 방향을 틀자 암릉이 벽처럼 막아선다.
겉보기엔
도저히 오를 수 없을것 같던
단애절벽의 암릉이 진행방향 우측으로 돌아가며
한뼘도 안되는 옹색한 암릉 틈새로 길은 내 놧는데 발목을 덮을 정도로
쌓인 낙엽으로 미끄러움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비래암 정상을 향한
암릉의 오름길엔 튼튼한 동아줄이 메여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올라선 비래암 정상의 풍광이 황홀하다.
잔뜩 찌프린 하늘이나 가시거리는 멀리 뻗어나가 바라뵈는 풍광은 장쾌하다.
사방팔방 시원한 산군들의 파도치는 연능들이 올라선 노고를 달래주고 위로함에 부족함이 없다.
(비래암 정상의 풍광들)
비래암 정상에서
등로가 두갈레로 갈린다.
첫 갈림길을 택해 더 걸으면 976봉인 만산으로 향하는 길로 생각된다.
욕심같아선 그길로 들어서고 싶으나 시간상 이내 숲은 어둠속에 잠길것 같다.
만산동을 향해 급격히 떨어지는
하산길을 외면하고 암릉의 끝까지 걸어 내려가 본다.
암릉의 날등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의외로 길이 아주 잘 나 있다.
발아래 단애절벽의 낭떨어지 아래로 노오란 낙엽송 숲속이 아름답게 내려다 뵈고
만산동 계곡이 길게 이어지는 풍광이 그림 처럼 아름답게 달겨든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만산동 계곡풍광)
암릉의 끝에서 내려설 등로를 찾아보나
위험을 감수하며 내려야 함에 안전을 위해 왔던길을 되돌아 올라
정상에서 기존의 등로를 택해 만산동 계곡을 향한 하산길을 택해 내려섰다.
급격한 경사도의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 만산동 계곡의 임도에 도착하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숙소에 도착하자 배가 고프다.
아내와 아들은 아직도 재미가 좋은지 돌아올 줄 모른다.
우선 허기나 메우려 라면을 끓였다.
펄펄 끓는 라면을 식탁에 옮기려 냄비를 집는데
나무 손잡이를 너무 바싹 잡는 바람에 연결부위의 쇳덩이와 접촉된 손가락을 데였다.
우이씨~!!!
산속에 들며 찾아든 마음속 고요가 순간 허물어진다.
라면맛이 다 떨어지고 손가락은 아려오고 신경질은 솟구친다.
그때 아내와 아들 처남이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선다.
나들이에 만족한 모습들이다.
아들녀석이 내가 끓인 라면에 관심을 보인다.
먹으라 앞으로 내밀자 단숨에 먹어치우며 하는말
"울 아빠 라면은 역쉬 팅팅불은 라면인데~"
"그래두 이상허게 맛있단 말여~!"
시내를 다녀온 아내의 손엔 먹거리가 넘처난다.
그래봣자 안주거리지만...
늦은 저녁을 지어먹고 TV를 보며 맥주와 소주를 마시다
어느결에 잠들었나 일어나 보니 아주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을 먹고나서
산책을 나서는데 역시 꼼지락 거리기 싫어하는
아들과 처남은 그냥 숙소에 남아 잠이나 더 자야겠단다.
아내와 단둘이 오봇하게
계곡을 낀 임도를 따라 상만산동 까지 걸어 오르기로 했다.
전날밤 비가 살짝 내린듯
만산동 계곡의 수목들이 이슬을 머금고 있다.
사람하나 만날 수 없는 한적한 계곡길을 한시간 가까이 올랐다가
내려서는 아침의 산책길은 주변의 풍광이 넘 아름다워 지루한줄 모르고 힘든줄 모르게 다녀왔다.
(만산동 계곡의 풍광들)
늦게 먹은 아침으로 점심때가 되도록 배고픈줄 모르겠다.
짐을 정리후 하루밤 편하게 묵은 조용하고 한적한 산꾼의 집을 나서서 화천읍내로 향한다.
읍내 시장내 무료 주차장에 차를 주차후
메밀묵 국수와 메밀 꿩만두국을 파는 음식점에 들려
늦은 점심을 때운후 시장을 한바퀴 돌며 아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로 했다.
군인들의 집이란 가게에서
아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우리들의 대화를 듣던 쥔장이 고향을 묻는다.
대전에서 왔다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모자 하나를 구입하고 옷에 계급장을 달고 시계를 구입했는데
막상 가격을 치루려 하니 한사코 받지를 않는다.
자기 고향사람 만나 반가워 그러니 그냥 가란다.
이런~!!!
사실 충청도 사람들은
속마음을 드러 내놓질 않아 겉보기엔 무척 무뚝뚝한 편이다.
예전 군시절에 동기놈 하나가 전라도다.
이넘하구 외박을 나간적 있는데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잔 햇었다.
우리둘 대화하는걸 듣던 쥔장이 자네 고향이 어디여~?
하더니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마나 반색을 하던지 이것저것 먹어먹어 내놓더니
그냥 가란다 이유인즉 전라도 벌교에 산다믄 다 내 동상들이라나 뭐라나...
그날 이후 이넘이
을매나 전라도 의리가 어쩌구 저쩌구 자랑을 늘어놓던지
배때지 디럽게 꼴렸었는데 그넘을 다시 만나면 나두 자랑을 할 것인디 참 안타깝다.
아들놈에게
화천읍내 올일 있으면 반드시 이곳에 들려서
인사 깍듯이 올리고 들어가거라 명을 내렸다.
고향이 뭔지 ?
그게 다 사람 사는 정인가 보다.
타지에 와 고향사람의 훈훈한 인정을 받고 보니 가슴이 따사로와 진다.
(화천읍내의 거리)
(모자지간 뭔 말들이 저리 많은지 ? 걷는 내내 쫑알~쫑알~~~)
읍내 시장통에 들려
아들넘 귀대할때 부대원과 나눠 먹으라 떡집에서
찹쌀모찌와 인절미를 사고 서점에 들려 이것 저것 책을 골라
잔뜩 사들고 오후 8시까지 귀대시키면 된다는 아들을 오후4시에 부대앞에
떨궈 놓는데 지금껏 잘도 지껄이던 초록잎새의 말문이 닫히고 시무룩한 표정이 역력하다.
내려서는 아들놈에게
서운함이 잔뜩뭍은 마눌의 한마디 우리 아들 언제 다시 보냐~에
빙글빙글 웃으며 아들넘 하는말
"심여사~"
"쬠만 지둘려~ 금방 휴가 갈테니깐."
씩씩하고 활달하게 돌아서서
병영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니
우야튼 본인의 서운한 마음 숨기고 마음편히 돌아갈 수 있게
부모님을 배려하는 그놈의 심성이 대견하여 올때보다도 돌아 갈때의 마음이
한결 더 가볍게 느껴진다.
산에서 건강을....산찾사.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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