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지리산 동부능선
산행일 : 2010년 2월14~15 무박산행
누구랑 : 나홀로 안내산악회를 따라서.
정월 초하루...
결코 곱지 않은 시선을 뿌리친다.
함께 나서면 좋으련만...
그래도 ....
조심해서 잘 다녀 오시란 말에
미안함으로 오히려 발걸음은 더 무겁다.
차라리...
악다구니를 퍼 부어 대면 떠나는 발걸음이 더 가벼울 텐데..
명절...
정말 싫다.
아버님이 세상을 버린뒤론 더욱 더...
밑도 끝도 없는 인생길에 서로 보듬고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그러지 못함은 나의 부덕인지 ?
어린나이 15살에
대식구 식솔의 가장이 되어 평생을 고생하며 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배운거 없어도 모난것 없이 세상을 무난히 살다 가신건 그분의 성품이 워낙 온화 하시고 너그러워 그랬다.
그런 아버님을 울 마눌은 자기 친정 아버님 보다 더 좋다 그랬고 진정 그랬던것 같다.
그 성품을 내가 닮아야 했는데...
어둑어둑한 밤길을 달려
백무동에 버스가 도착한다.
모든 상념을 떨치고 산행을 준비한다.
싸늘한 밤공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맑게 만든다.
육체의 피곤함과 반대로 정신은 더 더욱 또렷해 지는 한밤의 지리산 언저리다.
살금 살금...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매표소앞을 지나는데
다행히 꽁단 아자씨들 깊은잠에 빠젔다.
야간산행금지..
또 불법을 저질럿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참샘에서 한번 쉬고...
내처 망바위까지 오른다.
올라서며 한꺼플씩 벗다 보니 고소모 내의 차림이라
망바위에 이르러 복장을 갖춘후 장터목 산장까지 올랐다.
급하게 행장을 꾸려 오느랴
난 준비한게 없다.
그저 날이 추우면 먹는것도 귀찮은 법.
그래서 떡 몇조각만 넣어왔는데 함께 걸음을 한
뫼오름과 손대장의 베낭에선 꾸역 꾸역 먹거리가 쏟아저 나온다.
그런데 난
빈대의 필수품인 시에라와 수저도 준비가 안됐다.
정말이지 오늘의 난 내가 생각해도 염치란곤 눈꼽만큼도 없는 왕재수 빈대다.
모두들 천사표 산우들 덕분에 새벽 한기를 떨치는 따스한 식사를 제공받아 배를 불린다.
허구헌날 올라온 천왕봉 일출...
그것보단 어둠속에서 바라본 얼음꽃에
마음을 뺏긴 산우들이 날 밝은 다음에 올라서길 원한다.
의기투함된 우린 그래서
서서히 어둠을 밝히는 여명에 맞춰
장터목 산장을 뒤로 제석봉을 향한 오름질을 시작했다.
우리의 선택은 ?
결론은 탁월한 선택였다.
제석봉에서 천왕봉까지의 풍광은 환상였다.
이른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올라선 선등자들은 추위에 열라게 떨기만 했을뿐
정작 일출은 보지 못했단다.
어름꽃...
쌓인눈이 따스한 햇살에 녹아 내리다
다시 얼어버려 어름꽃으로 환생한 그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침 아기햇살이 비칠때면 영롱한 빛의 그 아름다움이
마치 크리스탈 유리장식을 보는듯 현란하여 우리의 얼을 빼기에 충분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도 이리 아름답진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지금껏 산행하며 이 구간을 가장 늘려 터지게 걸은걸로 기억될것 같다.
훤하게 날이 밝아 오른 천왕봉....
이른아침 짙은 개스에 가린 태양이 그 개스를 거둬갔다.
덕분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처진다.
세상에~!!!
반야봉이 금방 폴짝 뛰어 내려가면 닿을것 같은 거리에 있다.
아주 멀리 있는 산들이 아주 가깝게 달겨든다.
중봉 하봉을 넘어 덕유산과 가야산까지 선명한 산의 연능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처진다.
모든걸 떨치고
컴컴한 어둠을 벗삼아 올라선 보람이 있다.
오늘은 참 복 받은 날이다.
천왕봉 아래 펼처진 선경에
세상사 살이에 지치고 상처받아 찢겨 신음하던 가슴앓이가 아물어 간다.
산...
산은 그래서 나에겐 영혼의 안식처요
살아야 하고 또 견뎌내야 하는 살이의 양식이다.
중봉을 향하는 길...
나뭇가지가 줄줄이 고드름을 달고 있다.
나뭇가지 뿐인가 ?
바위도 고드름을 달고 햇빛에 영롱한 빛을 반사한다.
구상나무가 그중 젤 멋지다.
저기에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면 ?
아니다.
뭔 장식이 필요한가
저 모습 그대로가 누구도 흉내 낼수 없고 모방할 수 없는 예술품인데...
중봉에서의 갈림길...
아무도 가지 않는길을 넘어선다.
누구도 밟지 않는 순백의 설원....
크리스탈 트리의 환상적인 풍광이 그곳에 펼처진다.
초암능선.
창암능선.
삼정능선이 나란히 나란히....
그리고.
그 뒤로 엉덩이를 불쑥 디밀고 올라선 반야봉 옆으로
허연눈을 이고 있는 만복대를 시작으로 지리의 서부능선이 길게 누웠다.
오늘은 참
조망이 깔끔하고 시원 시원하다.
하봉을 넘겨 두류봉에 올라서니
얼레~?
못보던 빗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아주 맘에 안드는 중국풍의 빨간 글씨다.
보고 느끼는건 다들 똑같다.
재치 넘치는 어느 산우님이 투덜 대더니
흰눈을 듬뿍 처 발라 흰 글씨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놓고 보니
정말이지 훨~ 좋다.
그쵸~?
예전에 있던 안내 이정표는 물론
길목 요소마다 펄럭이던 시그널이 죄다 수거됐다.
전에 한번
함양 독바위를 갔을땐 그곳 오름길의
철계단이 철거 됐었는데 지리의 동부능선을 원천봉쇄 하려고
무단한 노력을 기우리고 있는 느낌이 팍~ 든다.
그런데 두류봉에 빗돌이 세워진건 무슨 연유일까 ?
덕분에
상내봉을 앞둔 청이당 고개에서
허공다리골로 향한 초반 내림길을 잘못 잡았다.
이어지는 너덜길....
길이 않 좋아도 풍광이 좋기에 힘든줄 모른다.
얼마후 제대로 된 등로를 만난뒤 계곡에서 점심을 든다.
점심 식사도 역시 산찾사 왕빈대가 된다.
ㅋㅋㅋㅋ
허공다리 계곡...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무리 높고 깊고 웅장한 지리산이라 하더라도 봄은 오고 있었다.
마지막 민가를 지나고도
길고 지루한 길을 따라 내려 추성동에 이르러 무박산행을 끝낸다.
역시 지리산은
높고 깊고 웅장했다.
모처럼 찾아든 나를 반기는 지리산의 어름꽃에
나의 얼을 뺀 하루의 피로만큼 쌓인 행복감에 가슴이 벅찬 하루다.
산에서 건강을.....산찾사.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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