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 (전편)
여행지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 하바로프스크
어느날 : 2015년 4월18일(토)~21일(화) 3박4일
누구랑 : AM 트래킹(주) AD투어.
(여행 지도)
제1일차 : 4월18일 토요일
양양공항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전세기가
4월에서 12월까지 운항 하게 되는데 그 첫 운행일에 맞춰
AM트래킹에선 3박4일 일정의 AD투어를 진행 하기로 했단다.
나는 당연히 그곳의 비단산이 포함 되겠지 했다.
그런데...
없다.
나야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게 어쩜 당연한 일.
그러나 AM의 오너 히써니의 요청도 그렇고 러시아란 나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였나
의외로 초록잎새의 반응이 호의적이다.
꼬렉~?
그럼 가야징~!
드디어 D데이...
산찾사 가는길에 나의 산우님들이 여럿 붙었다.
덕분에 고맙게도 가는길이 외롭지 않아 좋다.
강원도 양양까지 씽씽 달려준 나의 애마덕에 시간이 남는다.
그 남아 도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으로 우린 동해의 횟집을 찾아 들어
간단한 요기로 물회를 시켰다.
물회맛이 기막히다.
이곳 쥔장의 여사님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우연히 그냥 들린 곳인데 맑은소리님이 즐겨보는 TV의 요리 경연에서 우승한 집이란다.
맛도 좋고 인심도 푸짐한 그집의 주요리가 섭국이라 했던가 ?
그러나 섭국은 섭섭하게도 시간이 없어 맛을 못 봤다.
식사를 끝낸 후....
그래도 여유로운 시간이라 동호해변을 들렸다.
한적한 동해의 해변...
시간만 더 허락 한다면 한동안 멍을 때리며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그저 바닷바람 한번 쏘인것에 만족한 우리 일행은
그곳 동호해변에서 지척인 양양 공항에 도착을 했다.
역시...
외진 곳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휑~하니 비었다.
그래 그런가 ?
주차비는 꽁짜...
아이~! 좋아라....
러시아 국적기 R3 항공을 이용한 이번 여행엔
여러 여행사는 물론 유명 산악회 회장단이 참여를 했는데
공항 대합실에 모인 사람들이 몽땅 단일팀으로 3박4일을 함께 여행하실 분들이다.
도착하자 마자...
여기 저기서 산찾사를 반겨주시는 분들은 나와 다들 한번씩은
해외 트래킹을 했던 지인들이라 오랫만의 만남이 참으로 반갑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출국 수속후
기내에 들어선 얼마후...
양양공항 18:10발 R39911편이
머나먼 이국땅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소형 여객기인 R3항공의 좌석이 의외로 안락하다.
앞뒤의 간격도 이만함 넓직하고...
다만 저가 항공이라 그런지 기내식은 간단한 음료수 한잔으로 끝이다.
분명 일정표엔 기내식을 주기로 했는데 웬일 ?
수소문해서 알아 본 즉...
인폼을 잘 못 받은 항공사에서 준비를 못 했단다.
양양을 떠난지 불과 1시간30분....
벌써 착륙을 준비한다.
헉~!
러시아가 이렇게 가까운 나라였나~?
러시아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왠지 스산하여 춥고 사람들 또한 친절하지 않으며
음울한 표정에 무뚝뚝 할 거라 짐작 했는데 입국절차를 받는 순간
러시아에 대한 첫 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입국절차가 참말로 간단하다.
여권만 주면 입국서식은 그네들이 다 알아서 작성 하여
본인의 싸인만 받아 챙긴 후 출국 서식용 흰 종이 한장을 내어 주면 끝이다.
그들이 내 준 흰 종이는 출국때 반드시 필요하니 잃어 버리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하는건 기본.
간단한 수속으로 입국을 끝낸 우리들...
깊어가는 이국의 밤거리를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좀 늦었지만 저녁식사를 위해 들린 식당의 메뉴가 킹크랩.
그런데...
킹크랩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인가 ?
시식의 결과는 기대 이하 였다.
우리나라의 영덕대게 맛을 따라 오려면 아직 멀었다.
살이 꽉 찬건 분명한데 맛이 짜다.
이곳에선 살아 있는채로 파는게 법으로 금지 된 탓에 다 냉동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짠가 ?
그래도 우야튼...
안주가 좋으니 酒님 생각이 간절한 산우님들이 맥주를 시켰다.
다른 테이블에선 러시아에 왔으니
당연 현지의 술을 마셔야 한다며 다들 보드카 한잔씩 하는 분위기.
저녁 식사후 식당과 그리 멀지 않은
호텔에 도착하며 러시아의 첫 일정을 끝냈다.
제2일차 : 2015년 4월19일 일요일
아침 모닝콜에 일어나자 마자 호텔의 커텐을 젖히자
알싸한 공기가 온몸을 감쌓다.
역시...
러시아는 동토의 나라인가 보다.
싸늘하다.
아침 조식은 호텔 부페식...
그런대로 난 입맛에 맞는것 같아 만족한 식사였는데
다른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호텔 체크 아웃 이후의 첫일정은
블라디보스톡 중앙광장의 재래식 시장 둘러보기.
이곳 시민들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은 물론 온갖 수산물과
생활용품을 내다 파는 재래시장이라 품질 좋고 가격도 제일 저렴한 이곳에선
특산품으로 건과류와 꿀 종류를 선물로 구입하는걸 권장한다.
이곳에선 넉넉하게 주워진 시간안에
각자 쇼핑의 시간을 갖고 시장을 둘러 보는데
사람 사는곳이야 다 그렇고 그런것...
러시아 시민들에
삶을 엿 볼 수 있는 이런 재래시장엔 볼 거리가 많아 좋다.
우린 이곳에서 건과류와
과일을 흥정하는데
역시나 말은 안 통해도 보디 랭귀지면 충분하여
깍을건 깍고 덤으로 얻을건 또 제대로 다 챙기는 체험의 시간이 됐다.
재래식 시장에 실증이 날 쯤엔
중앙광장의 지하도를 건너 백화점에도 들렸는데
그곳의 상품은 뭐 그닥 볼거리가 없어 바로 중앙광장으로 되돌아 온 우린
이곳 러시아의 거리를 오가는 이국의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로 남는 시간을 할애했다.
이번 행사엔 AM의 직원 둘이 따라 왔다.
은비와 승혜...
우리 아들 또래의 생기 발랄한 처녀들이다.
이런 해외 경험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거란 기대로 데려온
희선님의 바램이 이뤄어 지길...
재래시장 방문을 끝내고 다시 또 이동...
그래서 찾아든 관광지는 개선문이다.
소련은 숱한 전쟁의 역사라 그런지 가는곳 마다 전승지에 대한 기념물이다.
이곳 개선문도 그중 한 곳.
니꼴라이 2세때 건축된 이 건물의 원형은 파괴 된 후 다시 복원한걸로 알고 있다.
전쟁 출발 당시 승리를 기원하며 이 문을 지나간 후 러시아를 되찾게 되었다는 전설로 인해
이 개선문을 지날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 해서 현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 다.
그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나로선 그저 무의미한 건축물이다.
오히려 개선문 옆의 도로의 행상에 관심이 있어 그네들이 파는 물건을 둘러 보는데...
여기에서 초록잎새는
여권을 넣는 지갑 하나를 구입했다.
물건 흥정에 여념 없는 초록잎새와 달리 난
장사하러 나온 엄마를 따라 온 꼬마 녀석에게 관심이 더 많다.
이곳 어린애들은 어쩜 저리 한결같이 귀여운지 ?
개선문 관광을 끝낸 우리는
그곳에서 가까운 잠수함 박물관으로 이동을 했는데
마침 그곳의 교회 마당에선 무슨 행사를 진행중이라 잠시 구경을 좀 했다.
러시아의 교회는 모두 정교회 란다.
정교회 ?
그건 또 모야~!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셈족이 믿던 종교는 아브라함의 하녀 하갈에게 생긴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이슬람교를 그리고 본부인 사라가 낳은 이삭의 후예들인 유대교와 기독교로 나뉘게 되는데
따지고 보면 서로 한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교리 차이로 앙숙이 된 형제 종교라고 보면 된다.
그중 정교회는 기독교가 분리된 가톨릭교회,동방교회,개신교 중 동방교회에 속한다.
러시아의 정교회는
980년 블라디미르공이 국민통합을 위해 국교로 택했는데
이슬람교는 술을 금하여 酒님을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에 할 수 없이
동방정교를 택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이 오늘날까지 통설로 남아 있단다.
러시아의 정교회 행사를 구경나온 할머니와 손자...
이곳의 아기들은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특히 그 눈망울을 보면 아주 미친다.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이나 이쁘고 귀여운 아가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유진님.
한참이나 그 어린 녀석의 눈망울에 빠저 허위적 댄다.
C-56 잠수함....
옛 소련의 태평양 함대 소속으로
세계2차 대전에서 독일 군함 12척을 침몰시킨 전과를 올렸는데
그당시 잠수함의 원형을 살려 만든 이 박물관은 조각가 네나지빈과 건축가 산도크가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그 무적함대를 지휘한
함장 시체드린(Shchedrin)은 소련의 작은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고...
잠수함 박물관 관람 끝....
이어서 이동한 곳은 젊음이의 거리 아르바트 그리고 해변 공원.
이곳에서 싸장님을 애교로 살살 녹인 욘석들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는다.
난~?
국물도 읍따~!
그런 내가 불쌍하게 보였나 보다.
은비가 한입 먹어보라 주는데 맛이 아주 달달하다.
아웅~!
이건 완죤 내 스~타일...
그순간 나의 전용 경리담당 초록잎새를 찾아 보는데
이런~!
벌써 십리는 달아나 저멀리 걸어가고 있다.
해변공원...
이곳의 러시아 젊은 부부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왔다.
가만 보면 야들이 생긴거와 다르게 다들 다정 다감한 아빠와 엄마들이다.
해변공원의 아가들이 모래 장난으로
한세월을 보내는 것만 바라봐도 웬지 내가 다 행복하고
힐링이 되는 듯 한 느낌은 도대체 모야~?
천진난만한 아가들...
천사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지 ?
그 천사들의 모습에
예전 내가 별명을 달아준 까칠이 아저씨도 반했나 보다.
ㅋㅋㅋ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손을 내민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텀블링의 묘기로 나를 놀래키던 사내놈들의
여친과 함께 맑은소리님은 그곳에서 영원히 잊지 못 할 기념사진 한장을 남겼다.
어느덧 오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다들 따라 들어간 러시아 현지식당.
푸짐하다.
맛도 훌륭하고....
이어서 찾아간 관광지는 신한촌 기념탑.
나라 잃은 민족이 당해야 했던 설움과 한이 서린 이곳에서
우린 잠시 가슴이 먹먹해 짐을....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으로
20여만명이 6,000키로나 떨어진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다 3만명이 사망.
그 이후엔 소비에트가 붕괴되자 이젠 너희 나라로 돌아 가라는 민족감정에 의해 수만명이 또다시
연해주로 강제 이주 당해야 했던 아픔은 다 힘 없는 민족이라 겪어야 했던 한 많은 역사다.
그것도 제일 힘없는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
블라디보스톡 전망대...
신한촌에서의 울적했던 마음을 우린 이곳에서 풀어 버렸다.
버스에서 내려 불과 10여분 걸어 올라 만난
이곳의 풍광은 블라디보스톡의 관광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지 않았나 싶다.
이곳 블라디보스톡은 한인의 아픔이 곳곳에 서려있는 땅이다.
그 흔적들을 찾아 버스가 달려간 곳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받친 이상설 선생님의 유허지 였다.
그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라를 찾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분들과 그의 후손들을 그동안 방치하고 버려두진 않았는지 ?
이곳 강물은 흘러 흘러 한국의 동해로 흘러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설 선생님은 내가 죽으면 화장시켜 이 강물에 뿌려 달라고 했단다.
죽어서라도 고국에 가고 싶어한 독립지사의 한에 순간 숙연해 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곳 수이푼 강물은 그의 슬픔과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이상설 선생님의
유허지를 뒤로 한 버스가 광활한 대지로 들어서고 있다.
여기가 어디 ?
바로 발해의 유적지라고...
발해의 역사를 중국은 그들 변방의 역사로 왜곡한다.
러시아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네들의 엉큼한 속내야 안봐도 뻔~하다.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론 우리 고유의 땅이란걸 인정하기 싫어서가 이유다.
하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걸 인정하는 꼴이 되기에
신라통일을 강조하기 위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발해의 존재 조차
거부 했던걸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의 실학자에 의해 우리의 역사로 편입 됐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그 당시에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엔 이미 고구려 계승자임을 밝힌
증거가 남아 있어 발해는 우리의 역사임이 증명 된 사실이다.
당나라에 끌려간 대조영이 거란의 반란을 틈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거느리고 동모산 근처에 세운 발해는
무왕때 옛 고구려 영토보다 더 넓은 동북만주 일대와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러시아의 연해주
남부지역까지 차지하여 선왕때에 이르서는 해동성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 했었다.
한때 해상을 통해 산동반도까지
점령후엔 그곳에 발해고를 설치할 정도로 강력했던 발해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생긴지 10년밖에 안된 거란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 현상은 최근 발굴되는 유적지 마다
화산재가 발견됨으로 그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바로 백두산의 화산폭발이 원인이란다.
자연재해로 인한 파괴와 화산재로 인한 흉년에 발해는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단다.
한나라의 흥망성쇠가 한순간이다.
발해의 지배층을 이룬 고구려 유민 5만명은 후에 고려에 흡수되고
피지배층인 말갈족은 여진족에서 다시 만주족이 됐다가 훗날 청나라의 쥔장이 된다.
옛 조상의 웅대했던 흔적들을 확인한 우린 또다시
근대사의 굴욕적인 시대를 살아가며 투쟁해야 했던 선각자들의 삶을 찾아 길을 재촉했다.
그래서 찾아본 최재형의 집....
최 재형 선생 ?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
그러나...
이분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선생님께서는 1858년 1월20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출생
러시아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며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을 지내 셨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거부 기업가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지만 전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고
1920년 4월4일 일제에 의해 총살당하여 순국 하셨는데
그가 죽고난 이후 그의 후손들 역시 그 말로가 비참했다.
큰 아들 최 뽀토르는 1919년 서 시베리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둘째 아들 최 빠벨 뻬뜨로브나(최선학)은 일본 간첩으로 자인할 것을 강요당하다
내무 인민 위원부 직원들의 구타로 숨졌으며 그의 딸 최 류보비 뻬뜨로브나는 국가 은행 회계원으로
일하다 체포되어 1938년 총살되었다.
최 발렌찐 뻬뜨로비치는 1938년 알마아따에서 체포되여1992년 2월 사망했고.
최재형의 사위는 5명이나 총살당했다.
그런 독립지사의 유적지는 그러나....
이곳 연해주 교민의 노력으로 겨우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
명패 하나 걸어 놓은것 외엔 정말로 초라하기 이를때가 없을 정도라 안따깝다.
그의 생가를 뒷편에서 보면 더 더욱....
왜 이럴까 ?
은근 부아가 치민다.
한국정부는 도대체 무슨일을 했는지 ?
하긴...
뭘 더 바랄까 ?
2년전 독립운동가 구 익균 선생이 105세에 타계
하셨을때 국가 보훈처에선 현충원 묘지 안장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세번이나 생사를 넘나 들며 독립운동을 하신 그분은 안 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엮임한 최장수 독립지사 였슴에도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사유가
그분이 속한 단체의 법인세를 돈이 없어 못 낸거 였단 사실을 아시는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
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현충원에 안장되긴 했지만
그에 비해 독립지사를 잡아 넣던 김창룡은 대전 현충원 장군 묘역에 뭍혀있다.
아울러...
독립지사의 후예들은 하나같이 다 빈민으로 전락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천민이 됐지만
일제의 앞잡이들 후손들은 여전히 잘 처먹고 잘 살며 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며 살아가고 있다.
방치된 독립지사의 유적지...
왜 이런일이 ?
그 이유가 뻔하다.
현 우리사회 집권층의 조상들이 죄다 친일파의 후손들이니 당연하다.
우리나라 친일파의 후손중에 진실로 조상들의 죄를 사과하고 반성하며 일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은 명성왕후 시해의 주역으로 활약한
우 범선의 아들 우 장춘 박사외엔 없는걸로 나는 알고 있다.
우~이 c불~!!!!
최 재형 독립지사의 생가 방문 다음으로
블라디보스톡의 마지막 여정으로 들린곳은 고려인 역사 박물관 였다.
이곳엔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에서도
전혀 볼 수 없었던 아주 귀한 자료들이 전시 돼 있었다.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세분과...
독립지사 이 회영 선생처럼
거액을 독립운동에 투척하신 최 재영 선생은 물론...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
망라 돼 있는 항일 영웅 59인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처음 접해 보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공산계열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념적인 사상을 떠나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그분들의 업적은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본다.
그에 대한 평가는 후세에게 맡기고...
그게 정당하다.
단지 사상이 다르다고 그들의 업적을 가리고 은폐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블라디보스톡의
마지막 여정을 끝내는 식사후...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경험을 맛보기 위해 우수리스크 역으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