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라산 2편...성판악~관음사
산행지 : 한라산
산행일 : 2009년 5월24일 일요일
산행코스 : 성판악~진달래 대피소~동릉정상~용진각~관음사 주차장
(한라산 개념도)
지난밤 늦게 잠이 들었어도
이른아침 저절로 눈이 떠진다.
6시에 조반을 들고 여유롭게 출발하여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마도
오늘 산행은 겨울철 눈길 산행보다
더 수월하여 주워진 시간보다 더 여유로울것이 확실함에
서두르지 말기를 함께 하는 산우들께 연신 주문한다.
천천히...
천천히....
아~! 천천히 걸으란 말여~
성판악은 이곳을 들머리로
두번씩이나 올라본 곳이기에
낮설진 않으나 한겨울에만 왔기에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어제의 잿빛하늘이 오늘은 청명하다.
세상에 뭔 일이 있었냐는 듯
숲속의 원시림에 들자 모든 시름과 고민 괴로움이 저절로 사그라 든다.
오름을 오를수록
우린 세상사와 더 멀어지며 자연과 일체가 되어간다.
초반 우리를 제키며
성급하게 달려가던 등산객들이 사라지고
이내 우리들만이 여유로운 발길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사라 대피소에 이른다.
시간을 체크해 보니
진행속도가 여유롭게 걷는거 같아도 빠르다.
완만한 등로의 덕도 있지만 너널지대에 원목테크와
때론 폐타이어를 바닥을 깔아놓음에 발목과 무릅의 편안함이 한 몫 한것 같다.
덕분에 션찮은 나의 왼쪽 무릅이 덕을 톡톡히 본다.
처음 불편한것 같던 무릅이 얼마쯤 걸어 열을 받자 이젠 아무 느낌 없이 편안하다.
대피소에서 몸물을 빼고
그만큼 시원한 약수를 들이키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라 대피소)
오늘은 산행내내
겨우달려가 선등을 한다.
오늘은 겨우달리지 말고 겨우 걷지도 말고
겨우 기어가듯 가라는 나의 말을 겨우 겨우 마지못해 따르는
겨우달려의 뒤를 따라 밀림속을 걷는 내내 머리속이 상쾌하다.
주차장을 꽉 메운
그 많던 대형버스에 내린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무쟈게 혼잡스럴거란 나의 생각은 혼자만의 기우였다.
역시
한라산은 크고 넓고 높았다.
그 많은 인원을 품고도 혼잡스럽지 않아 사색하며 걷는데
크게 방해받지 않을 정도라 신기할 정도다.
날씨가 아주 좋은날
따갑게 내리 쬐는 태양의 빛을 가린 밀림속은
서늘하고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 또한 시원함에 힘든줄 모른 발걸음을 이어간다.
아~!!!
이런 숲속은
하루 한나절 아니 몇날 몇일을 걸어도 좋겠다.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삼실 산우들이 기다린다.
여기서 부터 정상까지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기에
길게 휴식을 하며 시원한 맥주와 간식으로 힘을 비축하기로 한다.
진달래 대피소를 떠나
고도를 높일수록 약간의 정체와 혼잡스럼이 있다.
아무래도 산행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나
산행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수목 한계선을 벗어나며
시원하게 뚫린 조망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저 나는 마냥 좋을 뿐....
천천히 걸어오른 동릉정상엔
세찬 바람이 불어 온몸에 한기를 느낄 정도다.
그러나 난 그 느낌이 아주 좋다.
맑은 하늘 아래
백록담이 아주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사방팔방을 향해 디카의 셔터를 눌러댄후 조금 내려서자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따사로운 햇살에 등판때기가 후끈하다.
마지막 오름을 앞두고
좀 늦어지는 병일이 부부를 기다려
아주 이른 점심을 정상 아래서 그냥 먹고 내려 가기로 했다.
(한라산 정상의 풍광들)
정상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은후
관음사를 향한 내림길로 들어섰다.
내림길엔 아무래도
부상당한 왼쪽 후방 십자인대가 걱정스러워
응급용으로 구입한 이래 한번도 착용한적이 없던 무릅 보호대를 했다.
그런데
이거 영~ 불편 스럽다.
내림길 초반 장구목에서
북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름길 보다 더 조심스런 내림길을 천천히 내리며
아름다운 한라산의 선경에 시선과 발목을 간간히 붙잡힌다.
용진각 대피소에 이른다.
오래전 아내와 함께 한겨울 관음사에서 올라설때
이곳에서 묵으며 고산등반 훈련을 하던 산악인들을 만났던 곳 였는데
이젠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자연의 재해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이란 생각이 든다.
용진각 앞에서 바라보는 고상돈 케론엔 한가닥 동아줄이 늘여진게 보인다.
겨우달려가 그걸 보더니
"형님 나 저곳 한번 올라가 볼텨~"
그걸 보노라니
문득 히말라야 등반후 자살해 버린 산우가 떠 올려진다.
순진무구한 산 사나이였는데....
산을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다 순수한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더라.
그 친구 역시
고산등반을 위한 팀원의 일원이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단지 시다바리로 비용충당을 위해 이용된걸 알았을땐 이미 늦었고
빚에 시달리다 끝내 처자식을 남겨놓고 자살이란 극단을 택하게 된 불운한 산우이다.
이곳을 지날때면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
아마도 그 친구가 여기 제주도 사람이라 더 그런것 같다.
(흔적만 남은 용진각 대피소)
(고상돈 케론)
(왕관릉 전경)
(삼각봉 전경)
삼각봉을 돌아 나가는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새로운 건물이 눈에 뛴다.
휴게소를 새로 짖나 보나.
아직 준공은 안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나중에 건물이 완공되면 숙박이 가능한가 ?
개미등을 타고
원시림속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
그간 참고 참았던 몸물을 탐라 계곡 대피소에 이르러
시원하게 배출을 하고 보니 몸도 마음도 시원하다.
이젠 한라산 등반 종점인 관음사가 지척이다.
룰루랄라
만만디 산행을 이어온 산행였건만
역시 겨울 동계 산행보다 진행속도가 훨~ 빠르다.
관음사 주차장의 화장실 옆에 마련된
씻음터에서 대충 세수와 발을 닦아 내고 샌달로 갈아 신으니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다.
베낭과 짐을 버스에 올려놓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 가니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건네는데 바로 옆자리의 철리님과
거브기님 향기나님 일행들이 나를 보더니 캔맥주를 권한다.
걍~
예의상 한번 팅겨본 뒤 얼른 캔맥주를 받아든다.
한손엔 아이스 크림 또 한손엔 시원한 캔맥주로 식탐을 즐기는데
귀로에 먹을 회를 시킬건데 함께 할거냐며 철리님이 의사를 물어온다.
올커니 잘됐다며 우리일행 10명분을 주문해 둔다.
제주항에 가기전
의례적으로 들리는 제주 특산물 코너...
역시 별로 볼것 없다.
그리고 이런곳은 십중팔구 바가지 상흔이 분명 존재한다.
아니다 다를까
제주항에 들어서니 제주 한라봉 한박스 3만냥이 이곳에선 단 1만냥이다.
물론 맛보기로 맛을 봐도 품질엔 별 차이가 없다.
제주항을 떠나며
회와 소주로 뒷풀이를 하며 지루한 뱃길의 여정을 달래본다.
어제 들렸던 해녀촌의 반값도 안된 돈으로 더욱 푸짐한 회를 함께 먹으며...
(선상에서 뒷풀이)
한낮에 떠난 배가
망망대를 지나 다도해의 섬들을 만나자 해가 저문다.
선상의 일몰이 처연한 아름다움을 남기며 하루를 마감한다.
1박2일의 일상 탈출....
홀연히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 제주의 1박2일이
왠지 찜찜하고 우울함에 가슴이 한동안 먹먹해짐은
나 뿐만이 아녔으리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란 유서 한장 남기고
삶을 등진 그분을 향한 연민으로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란 물음앞엔
역시 그였으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의 서거 소식에 문득 떠오른 단어가 독야청정(獨也淸淨)이다.
3당 통합을 야합이라며
김영삼을 밀어내고 전라도당 간판을 내걸고
부산에서 출마할때 부터 난 그를 좋아했었다.
왜~?
바보 병신 같아도 정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가 그냥 좋았고
권위를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가식을 배척하는 그가 그냥 맘에 들었다.
그님의 버팀목인
도덕성을 깡그리 무너트려 죽음에 이르게 만든게
누구의 책임였든 간에 우린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반칙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해야 할것이다.
다시한번
그님의 명복을 빌면서....
산찾사.이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