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6년 11월01일(수요일)~11월 06일(월요일) 5박6일
산행지 : 중국 황산 서해 대협곡
누구랑 : 산찾사.초록잎새.너른숲.황금사과.거브기
(11월 1일 수요일)
황산은 대한항공 CF로 인해 그곳이 알려지면서
국내 산악인이라면 꼬옥 가고싶은 외국의 명산목록 1위를 차지한지 오래다.
많은이의 입소문과 다녀온이들의 산행기를 보면서 염원사항이 된 황산을 기획하며
함께할 산우를 물색하는 공지를 올리고 때를 기다린 결과 숲님부부와 거브기님이 나서줌에
차량1대로 평택항을 향해 출발하는 날은 날도 좋아 여행의 설레임에 가슴은 야릇한 흥분으로 두근댄다.
오후 4시 집결의 평택항을 향하는 도중
당일 일찍 조퇴하고 수원에서 평택으로 내려오는 숲님을 역에서 만나
함께 서해대교 아래에 자리한 평택항까지 이동하여 주차장에 나의 애마를 잠재우고
1층 대합실에서 이번 여행의 가이드를 만나 출국수속과 기타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시간은 남아 지루하지만 지루함을 느낄수 없는것은 정겨운 산우님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출국수속과 검색대를 통과후
선내의 기실 자리배정을 받고도 1시간을 넘는 기다림 끝에
우리를 실은 육중한 황해페리가 서서히 어둠속에 깜박이는 서해대교 아치의 불빛을 뒤로하며
본격적인 이국을 향한 나의 첫 해외 여행이 시작된다.
(평택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나와 거브기님이 배정받은 8인실 2층 침대구조를 갖춘 선실은
좀 협소한 느낌이나 그런대로 깔끔한 느낌이 드는데 커튼과 배낭등을
수납할 공간까지 있어 코고는 동료만 없다면 숙면을 취할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침대에 베낭을 내려놓고 바로 옆방의 아내를 불러 너른숲님의 선실을 찾았다.
낯가림이 심하고 자리가 바뀌면 좀처럼 잠을 못이루는 황금사과님을 위해 너른숲님은
전 일정 모두 여행비를 추가 2인1실을 신청했는데 그곳을 가보니 원래 4인1실을 2인1실로 내준것으로
베란다까지 갖춘 호텔급 수준의 객실이 그냥 봐도 아늑함이 풍겨온다.
너른숲님 부부는 간이 침대 2개가 더 있으니 그냥 함께 자자 하여 염치불구 덕분에 편안한 밤을 보낸다.
방을 배정받고 나자 곧바로 석식이 제공되는데 4000원의 급식비치곤 국내의 어느 한식 부폐 못지 않는 식단이
제공됨에 배를 불린후 선실 이곳 저곳을 구경후 거브기님을 불러 함께 늦게까지 안전 무사고 여행과 산행을
기원하는 조촐한 우리들만의 술잔치로 밤은 깊어만 간다.
(서해대교의 야경)
11월 02일 (목요일)
이른아침 호텔같은 선실의 아늑한 침대를 벗어나
해풍이 스치는 망망대해의 어둠을 밝히는 선상일출을 보려 갑판으로 나선다.
동녁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수평선이 어느순간 짙은 안개에 그 빛을 잃어 버린다.
오늘 선상일출은 틀렸구나 생각에 서운함이 왈칵 밀려든 난 수평선의 안개를 뚫고
뒤늦게라도 떠오를 태양이라도 보려 자리를 지키는데 항상 바지런한 숲님은 그새를 못참고
선실의 샤워장을 찾은사이 어느순간 바닷물이 싯뻘것게 변하면서 아기햇살이 고개를 들더니
순간 불쑥 불덩이 하나가 떠오른다.
고개만 이리저리 움직거리는 거브기 행님이 순간 거브기 답지 않는 날렵한 솜씨로
디카의 셔터를 눌러대는데 혼자보기 안타까워 선실로 뛰어들어 갑판으로 일행을 불러내나 샤워중인
숲님은 끝내 그 명장면은 놓치고 만다.
(선상 일출을 기다리며...)
(장엄한 선상일출)
여행사 기획상품인 이번 일정표의
일조항 도착이 아침시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다되어 도착한다.
도착후 중국입국 수속을 위한 지루한 기다림끝에 선실을 벗어나 일조항을 나서는데
입국수속을 위한 항구로 이동시키는 버스가 우리나라 6~70년대의 아주 낡은 버스를 연상시킨다.
선실 트랩을 내려서며 내려다본 일조항은 황량한 벌판에 낡은 건물들이 삭막함을 넘어 당혹감을 일으켜
마치 수십년전의 궁핍했던 전후시대의 풍광이 아닌가란 ? 착각을 일게 만든다.
일조항에 마중온 현지 가이드를 만나
모든 일정을 함께할 33인승 버스를 타고 조선족이 운영한다는 한식당으로 향한다.
(일조항 전경)
(중국 일조항 입국장)
대구 소머리 국밥집이란 70년대식 간판의 한식 점심식사는
한인의 식성을 맞춘것 같은데도 왠지 뭔가 하나 빠진듯한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기에 지친 주린배를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어찌 알았는지 중국인 현지 아줌마 둘이 자전거에 개복숭아 수준의 과일을 담아
팔고 있는데 모양도 그렇고 때깔도 좋지 않아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두들 그냥 한번 만저보고 사려드는 사람이 없는중에 어느님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밀자
두 아주머니 당혹스러워 하며 손사레를 치더니 둘이 아주 불꽤한 얼굴로 뭔가를 소근대며 다른곳으로
이동하며 몇번을 뒤돌아보며 뭐라뭐라 지껄여 댄다.
옆에 있는 현지 가이드에게 왜 그런가 사유를 물어보니
그 아주머니들이 감당할수 없는 고액이라 그런거란다.
그렇게 물러나는 아주머니를 처다보며 낄낄대는 그 사람을 보니
돈을 가지고 희롱한게 분명하다.
그깟 돈 몇푼가지고 그분들의 자존심을 흔들어 버린 그사람을 보니
은근히 분노가 치민다.
제발 외국에 나가 저런 유치한 짓거리로 국가위신을 추락 시키는 짓은 그만했슴 하는 맘이 간절하다.
(현지의 과일 행상 아줌마)
중식후 바로 남경으로 이동한다.
33인승의 버스는 아주 협소하여 버스내 운신의 폭이 아주 작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끝없이 펼처지는 광활한 대지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데 한결같이 똑같은 풍경이 금방 사람을 질리게 한다.
가끔씩 나타나는 농가는 폐가처럼 보이는데 가이드말로는 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란다.
남경까지 가는 도중 우리나라 휴게소 역활의 주유소를 石化(석화)라 하며 그곳에나
몸물을 빼낼 수 있는 화장실은 그 구조가 아주 사람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나마 옆으로 돌려 앉아 용무를 볼수 있는 구조는 괞찮은데 마주보게 만든 구조의 화장실은
아주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여간 유들유들한 인간이 아님 나오던것도 들어갈판이다.
(우리를 아주 난감하게 만든 화장실...남여 모두 같은 구조임)
(휴게소의 매점)
늦은밤 남경에 도착하여
석식을 한식으로 때운후 또다시 곧바로 무호로 이동한다.
이틀 꼬박 장거리 이동에 모두들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무호의 4성급 호텔은
다행히 그 시설이 아주 뛰어나 신혼 여행이후 처음 자보는 호텔이 가슴을 설레이게 하나
평소 차 멀미가 심한 울 마눌 완죤 죽음직전이라 수습하는게 급선무다.
샤워후 숲님부부와 함께 5명이 마주 앉아 마시는 폭탄주 한잔이 그간의 피로를 달래준다.
맥주를 좋아하는 울 마눌 초록잎새는 연거퍼 들이 마시더니 콱 맥힌 가슴이 뚫린것 같다는 말에
오히려 내 가슴이 뻥 뚫린듯 시원하다.
너무나 고된 일정에 지친 심신은 아늑한 시설의 호텔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저
이른아침 서비스 콜 전화벨이 울릴때까지 그야말로 시체처럼 잠에 빠져든다.
11월 03일 (금요일)
새벽녁 호텔에서 제공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후 황산시로 향한다.
무호시를 빠저 나가는 도로는 삼륜차 자전거 오토바이와 사람 심지어 짐승들까지
뒤섞여 건너고 오가는데 중앙선은 그냥 형식상의 줄을 그어 놓은것뿐 역주행의 차량들로
완죤 사람 놀라 기절할 판인데 곡예운전의 운전기사는 반대편 역주행 차량이 오던 사람이 지나던
그저 클락션만 빵빵 울려대며 잘도 빠저나가는게 신기할뿐이다.
몇번의 위험스런 장면에 비명을 울려대자 가이드왈 중국은 무질서속에 질서가 유지되니 걱정말란다.
이른아침 출발후 점심시간에 도착한 북한직영의 한식당에서 점심식사후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재치와 재담으로 엔돌핀 팍팍 솟게 만든 총각 가이드 장 철군)
(중국 황산 개념도)

황산은 중국의 華東(화동)지역 安徽省(안휘성) 제일 남쪽 끝 위치에 있으며
안휘성을 흘러가는 양자강 이남에 위치해 있다.
최고봉인 1864m의 연화봉을 중심으로 72개의 봉우리와 5만개의 돌계단으로 된 황산은
남쪽 남해, 북쪽 북해,동쪽 동해, 서쪽을 서해라 부르며 가운데 분지형태를 천지라 부른다.
이산은 1990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황산은 명나라때 유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서 하객이 1616년과 1618년 두번 탐험후
중국의 오악을 보면 ~ < 동악(태산: 泰山), 서악(화산: 華山), 북악(항산: 恒山), 남악(형산: 衡山), 중악(숭산: 嵩山) >
다른산은 볼 필요가 없는데 황산을 보고나면 오악도 필요없다란 극찬이후
등황산 천하무산이란 말이 생겼다.
황산의 4절은 기송 괴석 운해 온천을 말하는데 우리가 찾은날은
가이드도 감탄할 만큼 날이 좋아 황산 4절중 기송과 괴석을 맘컷 감상할수 있는 행운이 우릴 반겨준다.
원래 계획된 시각에서 많이 늦은 관계로
옥병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1668 M의 옥병루를 오른다.
옥병루의 명물 남근석과 수령 1000년이란 영객송 주위엔 온통 관광객으로 북적댄다.
한쪽팔을 벌려 어서옵셔란 모양이라는 영객송은 속리산 정이품송을 연상시킨다.
이곳 황산의 소나무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1000M 이상에서 서식하는 소나무는 황산송이고.
그 아래는 말의 꼬리를 닮은 소나무란 뜻의 마미송으로 구분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나 내 눈에 그게 그것인 그저 우리 한국 어디에서든 볼수있는 소나무와 별반 다를게 없다.
옥병루 주위의 난간엔 열쇠가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데 이곳에 열쇠를 잠그고 키를 벼랑아래
던저버리면 평생 그 인연을 끊을수 없다하여 연인들은 각자 자기 이름을 세겨넣은 열쇠를 하나 메달아 둔다.
옥병루에서 마주 보이는 기암괴석의 암봉은 이곳 황산의 천도봉으로 세번째 높은 봉우리로 1810 M 이다.
(자광각 입구)

(옥병 케이블카)
(황산을 녹일듯한 산상의 미녀)
(옥병루 가는길)
(남근석 뒤로 옥병봉)
(천년수령의 영객송 ...우측이 천도봉)
(헤어짐을 막아준다는 열쇠를 주렁주렁단 난간에서...)
옥병루를 뒤돌아 나와 돌계단을 하나 하나 밟아 오르다 보니 연화정이다.
연화정 오른쪽으론 황산 최고봉인 연화봉이 우뚝 솟아 있다.
1864 M 인 연화봉은 주위의 여러 암봉에 둘러쌓여 연꽃처럼 보인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연화봉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휴식년제로 오를수 없어 가파른 돌게단을 내려선후
못생긴 물고기란 뜻을 가진 오어봉(鰲魚峰)을 향해 한발 한발 오른다.
오어봉을 지나 해심정(海心停)에서 서해대협곡으로 들어선다.
해발 1600m의 해심정에서 배운정(排雲停)까지는 해발 600m 까지 내렸다
다시 1600m 까지 오름이 시작되는 서해 대협곡 종주는 힘든 체력을 요구한다.
신선이 되는 다리라는 멋진 이름의 보선교(步仙橋, bridge of Immortal)를 건너
기념사진 한장을 남기곤 뒤돌아 나와 다시 보선교를 건너 두번 신선이 되어 본다.
보선교를 지나면 바로 바위 동굴을 통과하며 비로소 본격적인 서해대협곡이 시작된다.
(맨 뒤의 봉우리가 두번째 높은 1680 M 의 광명정)
(서해 대협곡의 풍광들)
배운정에 도착할쯤
서쪽하늘엔 붉은노을이 하루를 마감하는 마지막 불꽃을 사르다 사라진다.
황산 서해 대협곡.....
이 등로를 개척하라는 등소평의 한마디에
90명의 인명이 죽어가며 굴을 뚫고 바위를 쪼아 길을 냈다는
조선족 가이드 장 철의 말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님 도저히 이룰수 없는 대 역사임을 실감한다.
황산...
와서 보니 과연 중국이 자랑할만한 산이다.
그러나....
등황산 천하무산이란 말을 탄생시킨 명나라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서 하객이
우리의 설악산 한 자락을 밟아봤다면 그런 오만 방자한 말은 없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행내내 흙 한줌 밟아볼수 없는 황산은 인민의 피로 건설된 인공적인 등로다.
산행내내 설악에선 흔히 볼수있는 다람쥐 한마리, 나르는 새 하나, 아름다운 꽃한송이 볼수없어
마치 암릉덩어리의 이 황산도 인공으로 건설된게 아닌가란 착각이 들게 만든 황산은
규모에 감탄은 나올지언정 산행의 감동이 나에겐 일지 않는다.
진정 내 가슴이 메마른 탓인가 ?????
우리의 설악 용아릉을 주파후
대평마루님의 일갈이 황산 열개를 다준다 해도
설악의 한자락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그 말씀이 와서 보니 알겠다.
아싸~
우리강산 좋을시구~
땅거미 짙게 깔리는 서해 대협곡을 뒤로 서해호텔로 들어선다.
서해 호텔의 맛깔스런 한식부페가 오랜만에 입맛을 돋군다.
배를 불린후 이번엔 아예 너른숲님의 방에 짐을 풀고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소주와 맥주로
한밤을 보낸후 달콤한 잠에 들며 하루를 마감한다.
(서해 대협곡의 일몰)
(서해호텔에서 두 부부)
11월 04일 (토요일)
이른 새벽
황산의 두번째봉인 1860 M 의 광명정 일출을 위해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에 나섰다.
한밤중 하늘의 별빛보다 더 많은 불빛들의 꼬리가 길게 광명정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광명정으로 향하는 도중
조선족 가이드가 모든이의 발목을 잡아놓고
어둠속에 형체만 알수 있는 거대한 소나무를 가르키며 저것이 단결송이라 일러준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민족수와 소나무 가짓수가 같아 한몸에 굳게 붙은 소나무 처럼
모든 민족이 단결하여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자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지었단다.
그놈들 참 이름도 잘도 갖다 붙인다.
그렇면 그중 삐딱하고 비루먹은 가지는 분명 티벳의 가지인가 ?
혹여
새로운 가지가 생겨나면
동북아 공정의 일환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그놈들인지라 우리 민족도 포함시킬까 두렵다.
광명정의 일출은
장관을 연출하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일년 열두달 이런 일출은 세번 보기 힘들다 하니
우린 참으로 행운아다.
(광명정의 일출)
광명정의 일출후
일찍 하산을 원하는 일행은 먼저 내려 보낸후 비래석으로 향한다.
원래 일정은 이곳에서 조식후 비취계곡~광명정~북해경구~백아령~운곡사로 하산인데
가이드나 함께 산행하는 일원들은 산행을 이어갈 의사가 없어 보인다.
전체 54명의 인원중 불과 10여명만이 비래석으로 향한다.
마치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것 같은 모양의 합장바위를 지나자
대한항공 CF로 황산을 알린 그 유명한 비래석이 우뚝 솟아있다.
비래석은 남자는 오른손, 여자는 왼손으로 세번을 만지며 돌게 되면 소원성취 한단다.
(비래석 전경)
(하산하며 바라본 광명정 풍광)
비래석을 뒤돌아 나와 광명정에서 후미를 기다리는데
사진찍기에 심취한 후미 둘이 뒤늦게 나타나 가이드와 함께 기다리는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시간이 지체 되어 먼저 하산한 사람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백아봉은 생략하고 곧장 운곡사로 하산을 결정한
가이드의 일방적인 통보에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어 꿀먹은 벙어리 모양 나 혼자 애타는 가슴은
내 욕심만을 드러낼순 없어 내려서는 내내 미련이 남아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데
그나마 일행중 반은 개인당 만오천원의 비용을 부담하며 케이블카로 하산을 한다.
운곡사로 향하는 돌계단으로 향한다.
얼마쯤 내려서자 운곡사에서 올라서는 등산인들이 밀려들며 하산길이 복잡해 지는데
거기에 등짐을 지어 나르는 인부들도 끊없이 올라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마치 예전 우리 시골의 물지게를 지어 나르듯
대나무 양끝에 무거운 짐을 달아메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짐꾼들은
하나같이 가냘퍼 보이는 몸집에 비해 짊어진 무게는 그네들의 고단한 삶 만큼 무거워 보인다.
그네들의 모습을 담으려 카메라를 디밀자 손사레를 치며 돈을 요구하기에 그만 카메라를 돌린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정말 멍청한 짓이 분명한 이 현상은 케이블카를 이용한 운송보다
그네들의 일거리를 보장해 주기 위한 일환으로 모든 운송수단은 짐꾼들에 의해 이뤄지도록
국가가 보장해준다니 이 또한 사회주의 국가만이 할수 있는 정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운곡사로 향한 내림길의 풍광들...)
(운곡사 입구)
운곡사까지 내림길의 주어진 2시간을 1시간만에 내려선후
모처럼 흠뻑 적신 윗옷을 갈아입고 비로소 아쉽지만 황산 산행을 마감한다.
후미일행이 모두 도착후 우리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려 오랜만에 돼지 삼겹살로
아침인지 점심인지 헷갈리는 식사를 끝낸후 일정엔 나와 있지 않던 황산시의 씰크공장 견학후
발맛싸지 체험을 위한 일정에 든다.
별로 볼거리 없는 실크 공장견학후
발맛사지 체험은 개인부담 3만냥을 요구한다.
빡센 산행외엔 별 관심없는 우리 대전팀은 간단한 샤워후 황산시의 거리탐방에 나섰다.
이곳 저곳 거리를 다니는 사이 맛사지를 받고 나온 일행을 기다렸다 한식당에 들려 늦은 점심을 먹고
명조와 청조시대의 옛거리 탐방에 나섰다.
명청대 옛거리는 물고기 모양으로
약 1300M 의 주거리는 물고기 척추에 해당되고 수많은 골목은 물고기 가시부분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인사동 거리를 연상시키는 주거리는 각종 문방사우를 비롯한 각종 진귀한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청조 시대 옛거리)
청조시대 옛거리를 탐방후
버스가 기다리는 황산시 신안강변으로 나오자
또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신안 강변의 풍광들..)
모든 일정을 끝난후 내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머나먼 귀로에 접어든다.
빠듯한 일정에 모자란 잠과 힘든산행으로 피곤에 지친 몸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남경 호텔 숙소까지의 머나먼 여정은 올 대청호100 KM 울트라 마라톤 완주후에도 멀쩡한 체력을 과시한
너른숲님마저 K.O 를 당해 나가 떨어짐을 미뤄 짐작 하건데 하물며 연약한 두여인의 괴롬은 뭘로 표현할까나...?
(피곤한 여정에 녹 다운된 너른숲님)
11월 05일 (일요일)
지겹도록 먼 귀로의 여정 끝에
그간 함께 숙식을 함께한 조선족 가이드 청년 강 철을 보냄이 서운해
환전한 중국돈으로 참깨와 서리태콩을 사고 남은 돈 100원을 쥐어주며 돌려보낸후
일조항을 빠저나가는 배에 오르자 벌써 고향에 다가간 느낌에 마음이 푸근해지며 놀놀해진다.
마지막 밤을 선상의 객실에서 무사산행과 고된일정을 소화해낸 우리팀의 자축을 위해
생맥주와 북어 쥐포 훈제 닭고기를 사다 펼처놓고 밤 이슥해지도록 먹고 마시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선상 일몰을 기다리며...)
(누가 더 멋진 일몰을 잡는지 두고 봅시당~)
(한쪽엔 지는 햇님이...)
(다른쪽엔 뜨는 달님이 우릴 반겨준다.)
11월 06일 (월요일)
서해 앞바다의 풍랑를 뚫고 정시에 평택항을 들어선 황해훼리는 그러나
거친 파도로 인해 접안을 못해 장장 3시간의 또다른 기다림 뒤 어렵게 어렵게
드디어 내나라 내 땅을 밟는다.
대전으로 향하는 귀로에
소고기 국밥으로 속을 달랜후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5박 6일 떠나온 우리의 산하는 가을의 정취 물씬 풍겨나는 뒹구는 낙엽위로
늦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해저온다.
산에서 건강을....산찾사
(중국을 여행하며 느낀 나의 생각)
중국이란 나라를 표현할때 흔히들 모든 중국인은
1. 죽을때까지 자기 나라글인 한자를 모두 알수 없으며
2. 자국의 모든 요리를 모두 맛볼수 없고
3. 저희가 태어난 조국의 전국을 모두 가볼수 없다. 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은 거대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중국 대륙의 일부를 몇일간 돌아본 내 느낌은
비록 우리의 6~70년대를 느끼게 만드는 농촌과 도심의 빈곤이 눈에 보이나
거대한 용이 비상을 위해 꿈뜰대는 느낌을 도로를 운행하는 화물운송 차량에서 느꼈다.
자가용과 대중교통이 대다수를 채우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비해
엄청난 양의 화물운송 차량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중국은 분명 시들해져 가는 미국을 대신할
경제대국으로 성장할게 분명하다.
흔히들 우린 중국을 얕잡아 보고 무시하려는 경향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눈빛을 통해 강하게 느꼈다.
비록 현재 그들이 빈곤하다 하나
한밤중 아파트의 불빛하나 새어나오지 않을만큼 검약한 그들에게
언제라도 우린 추월당할수 있는 존재다.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나라의 부강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이 이번 여행의 일깨워줌이다.
東北工程 의 일환으로 역사까지 왜곡하는 저들의 음흉함에 경제적인 힘이 가세한다면
일본이 철도부설권과 탄광개발의 이권을 위해 우리의 땅 간도를 청나라에 넘긴
간도협약의 무효성을 고려하여 되찾아야할 우리의 권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우리 땅 전체까지
넘볼 나라임을 염두에 둬야할것이다.
모건 스탠리의 앤디 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한국이 4~5년 안에 성장 엔진을 못 키우면 중국의 일개 邊方(변방) 역할을 하거나
필리핀 수준의 貧國(빈국) 으로 추락할것이다 라고 말했다.
정치 경제 군사적인 영향권에 대등한 관계를 위해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함으로 여행객들은
단지 못산다는것 하나로 그네들의 자존심에 상처받는 행동을 자제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어
마지막으로 이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