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행기

지리산 동부능선 전망대 왕산 필봉산

산 찾 사 2007. 3. 9. 14:00
 

산행지 : 산청 왕산(923m). 필봉산(853m)

 

언제 : 2007년 3월07일 수요일(흐리다 맑다 눈오다 맑다 헷갈리게 만든날씨)

 

누구랑 : 초록잎새와 단둘이 오봇하게

 

산행코스 : 주차장~구형왕릉~망경대~906봉~왕산~여우재~필봉산~왕산

                ~ 이정표~류의태 약수터~구형왕릉~주차장 (원점휘귀 4:30 산행)

 

 

                               (산행 개념도)

 

36년만에 최고의 추위로 기록된 꽃셈추위가 매섭다.

아내와 단둘이 조령산의 촛대봉 릿찌를 타고 오르려던 일정을

매서운 추위와 눈으로 인해 좀 위험스러울것 같아 산청의 산중 아직 가본적이 없는

왕산 필봉산으로 변경후 대진고속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려 구형왕릉 주차장에 도착 나의 애마

투산이를 잠재우고 가락국의 비운이 서려있는 구형왕릉을 시작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김 유신의 증조부,구해,또는 양왕으로 불리는

가야 제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묘는 특이하게 돌무덤 이다.

나라를 신라에 이양후 이곳에서 생을 마친 한을 무거운 돌로 지긋이 눌러 잠재운

구형왕릉을 둘러본후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임도를 가로질러 왼편의 능선을 향해 오른다.


              (구형왕릉의 모습)


 

 

꽃을 시셈하는 추위가 모질게 매섭긴 매섭다.

경칩을 넘긴 뒤라 그간 포근한 날에 마음 놓고 나들이 나온 도룡농이

바위위에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어 톡 건드려 보니 동태처럼 얼어붙어 죽어있다.

그 모진 겨울을 견뎌낸 보람 없는 허무한 죽음이다.

시셈은 참말로 독하다.

 

      (꽃셈추위에 얼어죽은 도룡농)

 

임도를 넘겨 능선으로 향하는 등로는

몸을 알맞게 덥혀줄 만큼의 경사로를 유지한 육산의 소나무 오솔길이다.

솔향을 맡으며 걷다보니 얼굴과 손은 시려도 등판때기론 땀이 흘러 겉옷을 벗어

갈무리한후 능선을 향해 아내와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한컷 게으른 발걸음을 옮긴다.



 

개념도상 395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80봉을 넘기자 하늘을 볼수 없던 소나무 숲그늘이 순간 벗어지며 조그만 규모의 암릉을 만난다.

이 암릉이 망경대다.

 

목은 이색,포은 정몽주,도은 이숭인,야은 길재,충은 김충한과 더불어

6은으로 불리던 농은 민 안부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 시키고 조선을

세운것에 반대하여 세상과 단절후 이 바위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하여

이 암릉을 망경대라 한단다.

 

망경대는 민 안부의 후손들이 비를 세우고

글을 세긴듯 암릉의 아래턱엔 주~욱 민씨 일가의 이름이 세겨 있다.

망국의 한을 달랠거면 좀더 올라 왕산 정상까지 올라서지

겨우 요기까지 올라선걸 보면 그 양반의 다리통은 참말로 부실한게 틀림 없을 것 같다란

비틀린 생각이 드는건 아마도 바위에 세긴 붉은 글씨탓인 것 같다.

아름다운 금강산 바위마다 세긴 위대한 김일성 원수 어쩌구 저쩌구의 글귀가 연상되는

붉은 글씨가 어째 그리 곱게만은 보이질 않는다.

이곳의 조망 또한 시원찮아 보였는지 주위에 나무를 죄다 베어버린 흔적이 남아있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망경대)


망경대를 뒤로하고

왕산을 향해 오름질을 이어간다.

지속적인 꾸준한 오름길의 능선으로 칼바람이 매섭다.

 

그간 소나무 오솔길 터널을 걸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막아준

손수건 머리띠를 풀어내고 가방속에 묻어둔 겨울모자를 꺼내어 쓰는 동안

맨손이 얼어붙어 손가락이 곱아온다.

 

 


전통 한방마을로 향하는 이정표를 지나치자

전망바위가 반긴다.

구불구불 사행천의 경호강을 넘어 저멀리 황매산이 아스라이 조망된다.

여기서부터 왕산까지 거의 평탄한 능선으로 이어짐에 발걸음이 편안하다.

 

    (조망바위에서 초록잎새)

 


전망바위에서 불과 몇분거리에 위치한 806봉에 정상비가 있다.

전면에 왕산, 뒷면엔 이 비를 세운 모모 산악회의 이름이 세겨저 있는데

미안스럽게도 이 빗돌은 가짜 정상비다.

아마도 정상의 풍모를 간직한 주위의 풍광과 조망이 좋아 이곳에 세웟는진 몰라도

왕산의 정상은 더 진행하여 923봉이 맞다.


   (가짜 정상 빗돌)

 

906봉을 내려서자 헬기장이 반긴다.

널직한 헬기장엔 하이얀 서리꽃이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헬기장을 넘어 왕산 정상을 향하는데

시리도록 맑고 파란 하늘 아래로 흰 꽃잎들이 날린다.

봄눈이다.

참 별일이다.

구름이 잔뜩 껴있을땐 멀쩡하던 하늘이 웬일인지

맑게 개이자 흰눈이 하이얀 벚꽃이 날리듯 날리고 있다.

그걸 보노라니

무장정 한번 출전해보자 맘먹고 달렸던 첫 출전의 대청호 울트라 마라톤 생각이 난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가로등 불빛 아래 하늘하늘 날리던 그 풍광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한계에 이른 육신의 고통까지도 잊게 만들었던 그 꽃비처럼 왕산으로 향한 능선엔 봄눈이 나폴나폴 날리고 있다.

 

    (헬기장의 서리꽃들...)

 

오늘 날씨는 흐렷다 개였다 눈이 내리다 온갖 변덕을 다 부린다.

봄날은 여자의 맘과 같다더니

여자들의 맘이 이처럼 변덕이 심한지는 모르것다.

찬바람에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내 뒤를 따르는 초록잎새는

20여년을 넘게 같이 살아도 한결같은 마음인걸 보면 그 말은 틀린말이 확실한것 같기도 하구...

 

암튼

변화무쌍한 날씨속을 굳건히 걷다보니 왕산 정상을 밟았다.

왕산 정상비 뒤론 왕등재를 넘겨 지리산 천왕봉만 구름에 잠기고

지리의 동부능선은 고스란히 제 모습을 드러내어 골골이 그 장엄한 모습으로 반긴다.

 

웅석봉을 넘겨 꼬불꼬불 실뱀이 기어가던 밤머리재에서 한숨 죽인 뒤

왕등재로 다시 고개를 치켜든 지리의 동부능선은 마지막 힘을 다해 오똑이 솟아 올린

함양 독바위를 끝으로 그 여진을 가라 앉히고 있다.

 

예전

너른숲님과 단둘이 태극종주를 하며

바다처럼 펼처진 운무속에 섬 마냥 떠오른 이곳 왕산과 필봉산을 보곤

한번 꼭 가봐야지 맘먹은 이곳 왕산의 정상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 왕산의 정상은 한마디로

최대의 지리산 전망대다.


             (왕산 정상 빗돌)


    (맨 좌측 뒤가 웅석봉...실뱀이 기어가듯 밤머리재 그리고 왕등재 능선)


   (왕등재 능선과 우측 운무속의 천왕봉)


   (새봉을 지나 동부능선 끝엔 함양 독바위가 보인다..)


  (상고대가 뚜럿한 덕유산)


왕산을 밟았으니 다음은 필봉을 만나러 간다.

개념도상 왕산에서 필봉산까진 약 1km 남짓 거리다.

붓의 끝을 닮아 필봉이란 이름을 얻은 필봉산은 멀리서 보면 여인네의 젖가슴을 닮아

유륜봉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육산에 오롯이 솟아오른 암릉은 멀리서 봐도 금방 필봉이란 이름보단

유륜봉이 연상되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가운데 오똑 솟은 필봉산)


   (왕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광)


           (필봉산 가는길...)

 

 


 

금방 다가설듯 가까워 보이는 필봉산은 여우재까지 내림길이 이어지다

순간 고도를 높이면서 암릉이 막어서는데 직벽코스는 너무 위험스러워 빙 돌아 올라서는

우회로를 택해 오르는데 응달의 바위틈에 얼음이 얼어붙어 정상을 향한 오름이 조심스럽다.

 

필봉산 정상에 서자

사방팔방 막힘이 없는 시원스런 조망이 반긴다.

특히 지리의 동부능선은 바로 코앞으로 달겨들듯 아주 가까워 선명히

산 자락을 세밀히 보여주나 심술궂은 구름은 왕등재 뒤로 자욱히 깔려 천왕봉을 가렸다.

 

이미 때를 넘긴 시간이라

시장기에 배고픔으로 주린 창자가 아우성이나

매서운 칼바람에 밥상을 차리기가 귀찮고 추위가 무서워

정상을 내린후 바람이 자고 따사로운 한줌의 햇쌀이 내리쬐는 여우재를 넘긴

헬기장에서 아내와 함께 보온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밥과 찬으로 허기를 메우고

감미로운 커피한잔으로 추위를 쫒아 원기를 회복후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올라 왕산을  향한다.

 

   (필봉산 정상에서의 풍광)

 

 

 

 

 

 

 

 

왕산을 되 밟아 오른후

906봉 헬기장 아래 갈림길에서 진행방향 좌측의 길로 들어선다.

내려서다 처음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자 완만한 오솔길이 길게 유의태 약수터까지 이어진다.

 

   (매서운 꽃셈 추위속에서 봄을 싹틔우는 버들강아지)


       (유의태 약수터)


유의태 약수는 계곡의 지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다.

알려진 명성에 비해 샘터는 어느 계곡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샘이다.

내려서는 내내 올라서는 등산객을 볼수 없는데

여기부터는 이곳을 향해 올라서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명한 허준과는 같은 시대를 살은 사람은 아니나 드라마에서 허준 선생으로 그려지며

유명세를 탄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의태 약수터에서 수정궁터를 거처 구형왕릉으로 내리는

넓직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니 어느덧 오늘 산행도 끝이 난다.

 
 (구형왕릉 입구 다리아래 풍광)
 

 

    (구형왕릉 주차장 아래 왕림사의 전경))

 
 
  (덕양전 옆에 자리한 괴목)

 

  (구형왕과 왕비의 제사를 지내는 덕양전 전경) 

 


  (귀로에 뒤돌아본 지리의 동부능선) 

 

귀로에 바라본 덕유능선에

한자락의 햇쌀이 내리쬐며 운무에 가린

덕유의 속살 일부가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황홀한 덕유의 자태....

 

올겨울 포근한 기온으로 인해

상고대의 풍광이 아주 귀했는데

개구리 폴짝대는 경칩을 지난 절기에 이 무슨 심술인가 ?

 

놓친 고기와 남의 손에 든 떡이 커 보이듯

오늘 덕유산이나 갈껄 하는 아쉬움이 짙게 마음속을 스며든다.

 

덕분에 귀로엔 덕유능선에 내 마음을 몽땅 빼앗겨

텅~빈 마음으로 대전을 향했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덕유능선의 상고대)



                       산에서 건강을......산찾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