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주행봉~포성봉
누구와 : 하늘채 부부와 우리부부
산행일 : 2006년 3월 05일 일요일
많은 후유증과 함께 또다시 서러운 한을 남기며
상급단체 민노총에 놀아난 철도파업은 끝이 났다.
점심과 저녁도 굶어가며 속리산 지능선 줄기를 밟으며 도피하던 캄캄한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저 내리던 별빛은 왜 그리 시리도록 가슴을 후벼 파던지.....
재넘이과 숲님의 연신 구조하러 오겠다는 핸드폰 연락에
가슴 찡한 산우의 정이 그날 고된 여정을 견뎌 내는 큰힘이 됐다.
한국통신공사가 서민을 위해 전화비를 내려라 든가
수자원 공사가 언제 물 값을 내려달라고, 한전이 전기세 내리고 도로공사가 서민을 위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리라 노조원이 파업하는걸 본적이 있는가 ?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조건도 못찾아 먹는 우리의 입장에서 웬 비정규직 타령 ???
아무튼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동 떨어진 조건을 내건 이번 파업의 후유증으로
직장을 나가기 겁이 나고 두려운 현실에 암울한 기분을 달래려 가까운 근교 산행에 나섰다.
전날 저녁
그간 고생으로 3 kg 이나 빠저버린 몸무게는 이웃이 보기에도 티가 났던가 ?
6층의 하늘채 부부님 갈비를 사준다 억지로 잡아 끌어 포식을 하던 자리에서
황간의 주행봉~포성봉을 아직 못가 봤다는 말을 들어 오랫만에 그곳을 산행지로 정했다.
오전 10시 10분에 떠난 우린 만 1시간만에
1년전과 또 다르게 변모한 산행들머리를 찾아든다.
예비군 유격장을 지나
예전에 비해 더욱 널널해진 임도를 타고 오르다
이젠 육각정자의 지주자리 흔적만을 남긴 공터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곤
내처 가파른 오름질을 하는 동안 경칩을 하루 앞둔 봄날 나른한 기온에
육수는 쉼없이 흘러 흘러 등줄기 고랑을 타고 내려 엉덩이를 적신다.
일단 능선에 붙자 불어오는 봄바람은 상쾌하게 볼따구를 때린다.
사행천으로 흐르는 강줄기의 모습과 코앞의 지장산을 넘어 실루엣의 산하는 심란한 내 마음을
잠재우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힌다.
날카로운 능선 암릉 날등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봄날 산행은 야누스의 얼굴이다.
낙엽의 부드러움 속에 위장을 한 매섭고 냉정한 무서움을 감춘 빙판이 연속으로
우릴 곤혹스럽게 만든다.
평소
날렵한 몸매처럼 펄펄 날던 하늘채님도
오늘만큼은 그 날개를 접고 엉거주춤 설설기는 겁쟁이 느림보 거북이가 됐다.
힘겹게 오른 주행봉 정상...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이곳에 묘 자리를 잡았는지 ?
꾸물꾸물 하던 잿빛하늘도
묘자리 옆에 자리를 잡아 만찬을 벌이자 활짝 개이며 햇쌀이 내리쬔다.
봉분 옆에서 점심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려니
우리를 뒤따르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던 일행들이 올라서며
어서 일어서라는듯 우리 자리를 가르키며 저곳이 점심 먹기 명당이라며 서서 기다린다.
일어서라 하기도 전 우리는
갱상도 사투리의 시끌벅적거림에 온통 정신이 혼란하여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포성봉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전에서 아주 가까워 자주 찾아온 이곳 날등의 등로엔 추억이 살아 있다.
작년 숲님과 알콩달콩 서로 살아가는 얘기들이 다시 살아나 귓전을 울리고,
서울서 내려온 이 보원님과 투리님의 다정스런 모습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직장의 산우들과 가족의 수다스런 소근거림도 있고,
세파에 찌든 심신을 달래려 홀로 찾아든 외로움이 퍼덕거리며 살아 꿈뜰댄다.
날카로운 날등의 암릉지대는
급격한 내림길의 빙판을 조심스레 내려서자 육산이 맞아주고
이내 다시 백화산 포성봉을 향한 힘겨운 오름이 다시 시작된다.
이쯤에서 난 내려갈란다 마음에도 없는 앙탈을 부리며
지지배배 지지배배 연신 그 입을 닫을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아내와 하늘채님은
힘들어 그런가 ? 언제부턴가 기나긴 침묵속에 빠저 헤어날줄 모른다.
마지막 힘든 오름끝에 더 이상 오를것 없는 정상이 우릴 맞아준다.
백화산 정상 포성봉은 나에겐 아픔이 자리잡고 있는곳이다.
직장산악회 부원이며 고교 1년 선배였던 기관사 동료가 운행도중 직무사고로 순직한 그해
아깝게 산화한 산우의 넋을 달래려 찾아온 산지로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이곳 포성봉였다.
산 사나이의 정으로
조촐하게 차려진 젯상을 앞에 놓고 눈물을 뿌렷던 그 자리 포성봉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난 왠지 이 자리를 서면
빙그레 웃던 선배의 모습이 떠 올려저 가슴이 에려옴은 세월이 흘러도 어쩔수가 없다.
백화정사로 향한 능선의 내림길로 하산을 한다.
우측으로 저멀리 소나무 한그루가 이정표가 되어 방금 우리의 족적을 남긴
주행봉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발아래 유서깊은 반야사 사찰의 선경을 내려보며 걷는길은
뻬곡히 들어찬 밀식된 소나무숲길을 벗어나자 백화정사가 코앞으로 달겨들며
오늘의 산행에 끝을 알린다.
반야정사의 뜰로 내려서자
경칩을 하루 앞두고 일찌감치 땅을 박차고 올라선 개구리들이 짝을 찾는 합창이 울려퍼지고
사랑의 결실인 알들을 깨치고 올챙이가 뛰어나올것 같은 개구리알들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응달의 잔설은 아직 그대로인데
절기는 속일수 없고 어쩔수 없는지
연못속엔 벌써 안온한 봄날이 찾아든지 한참이다.
'국내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석산 인물사진 (0) | 2006.03.22 |
---|---|
전립선 짜릿한 암릉의 묘미 동석산 (0) | 2006.03.20 |
충남의 알프스 칠갑산 (0) | 2006.03.06 |
변산 쇠뿔바위봉 (0) | 2006.03.06 |
[스크랩] 무주에서 1박을 하면서... (0) | 2006.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