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진안 천반산
산행일 : 2020년 2월11일 화요일
누구랑 : 나홀로
어떻게 : 섬계마을 주차장~천반산 깃대봉~성터~송판서굴 경유~뜀바위~구량천변길~섬계마을 주차장
(산행지도)
(트랭글에 그려진 실제 동선)
연이틀 산행에 나섰다.
90년대 후반에 다녀온 천반산이다.
그땐 연평리 당집을 깃점으로 한 원점휘귀 산행인데
오늘은 국제신문 근교 산행팀이 걸었던 코스를 답습 하기로 했다.
이곳은 네비에 섬계산장을 입력하면 성산리의 섬계마을 주차장까지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주차장에 도착해선 300여미터를 더 내려가야
섬계산장 초입의 49번 국도옆으로 천반산을 향한 등로가 열려있다.
등로는 초반부터 섬계산장 뒷편의 산자락을 돌아 나가는데
등로는 계속하여 옆으로만
둘레길처럼 길게 이어지다 능선 사거리를 만났다.
이곳에선 정상을 향한 능선 대신 오른쪽 자드락길을 택한다.
등로는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어 푹신하다.
계속하여 걷기 편안한 둘레길마냥 옆으로만 이어지던 등로가
어느덧 계곡을 건너자 마자
등로는 희미한 상류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길엔 밟으면 금방 부스러져 버릴것 같은 작은 개골창을 넘기자
순간 길이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다행히 국제신문 표지기가 친절하게 안내 했는데
아이구야~!
능선이 몹시 가파르다.
행복 끝 불행 시작 ?
흐미~!!!
지금껏 편안했던 길과는 천당과 지옥이다.
얼마 안돼 오름질로 내 몸은 금방 땀 범벅이 된다.
오늘따라 덥긴 왜그리 덥던지 완전 봄날이다.
한동안 힘겨운 오름질로 드디어 주능선에 안착했다.
그러자 비로소 편안하게 오를 수 있던 원목계단이
천반산과 휴양림으로 갈리는 삼거리로 인도한다.
이곳에선 한차레 조망이 터지긴 했는데
오늘도 역시 미세먼지는 나쁨 수준이라 조망은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산능선을 디카로 땡겨 확인해야만 할미봉에서 남덕유로 이어진 능선임을 알 수 있었다.
삼거리 이정목에서 정상은 지척이다.
힘들게 정상에 올랐으니 인증샷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인증사진을 남긴후 곧바로 천반산 깃대봉에서
성터로 향한 능선을 한번 내려갔다 올라선 암봉엔
뿌리를 굳게 내린 소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뒷편으로 시원스런 조망이 터진다.
이곳에선 금강지류의 물줄기와 함께
진안.장수군 일대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그중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뾰족 내민 산봉오리를 망원렌즈로 땡겨 보았다.
그러자...
햐~!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였다.
나는 한동안 조망에 빠저 허위적 대다
문득 추위가 느껴저 다시 또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말바위을 지난다.
아래 사진이 말바위...
능선 안부의 잘록한 부위가 말잔등처럼 생긴
말바위에선 장전마을을 휘감고 돌아 나가는 구량천의 물빛이 검푸르다.
어느덧...
휘적휘적 걷던 걸음이 흔적만 일부 남아있는 성터에 이른다.
이곳은 급진적 사상가 정여립의 한이 서린 장소로 알려져 있다.
天下公物說(천하공물설)을 주장하고
不事二君論(불사이군론)을 비판한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은
동인을 제거 하려던 서인의 음모로 송익필과 정철이 날조한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의 피바람을 일으키게 한 중심에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의 정치사상이 빌미가 된다.
관의 요청으로 왜구 토벌에 나섰던 공개 조직인 대동계는 핑계일뿐 모반 조직이 아니다.
전설엔 이곳 성터가 동서분당으로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정여립의 군사 조련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기축옥사에 관련된 인물중 정철은
우리 국문학사에선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정여립 모반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인격과 품성을 알 수 있는데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때 일화에선 그의 인품이 자세하게 들어난다.
그당시 정철은 일처리가 공정치 못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하는데
오죽하면 그 고을 백성들은 이름을 잘 모르는 물고기가 잡히면
"야~! 이놈,정철아~!" 하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니
더 무슨말을 하랴~!
역사는 훗날 모든걸 증명한다.
그러니 누구든 올바로 삶을 살아야 한다.
역적으로 몰린 정여립이 군사를 조련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성터 가운데를 대략 500여미터를 가로지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송판서굴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향하다 가파른 벼랑길의 원목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조선 세종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보산은
1456년 세조의 왕위 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했고
그의 부인은 송판서굴에서 1.5km가량 떨어진 할미굴에 기거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내가 송판서굴을 둘러보고 나가려는 순간
중년의 사내 4분이 오더니 굴안에서 합장을 한 후 소원성취를 염원한다.
그중 한분이 자신들은 송판서의 20대 직계 후손이라며 자부심을 들어낸다.
전주에서 오셨다는 그분들은 우리 조상님을 찾아 오신분이라
뭐든 주고 싶다며 이것저것 나에게 먹거리를 권한다.
극구 사양하긴 그래서 요구르트 한병만 받아 고맙게 마신후...
왔던길 그대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
정여립이 이쪽 바위에서 저쪽 바위로
말을 타고 훌쩍 건넜다는 구라같은 전설을 품은 뜀바위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기막히다.
얼마후...
정여립이 말을 타고 훌쩍 뛰어 넘었다는 반대편 바위로 향한다.
건너온 뜀바위의 암봉도 역시 조망이 좋다.
이곳에선 구량천 물빛이 옥색인데 그 색감이 참으로 아름답다.
여기서도 진안의 명물 마이산이 뚜렷하다.
풍광좋은 이곳 암릉에서 나는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후...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보며
감미로운 커피 한잔과 함께 나는 한동안 멍~을 때렸다.
하아~!
이런 시간들이 참 좋다.
이때 만큼은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악다구니 같던 세속의 삶들이 죄다 바람에 씻겨 나간다.
어느순간 찾아든 고요와 평화...
그리고 정화된 마음을 간직한채 나는 죽도를 향한 능선을 따라 걸어 내렸다.
어느덧 내림길의 까탈스런 암릉이 진정된후
사색하기 좋은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장수와 장계에서 발원한 천천과 무주군 안성면에
뿌리를 둔 구량천이 합류해 휘감아 흐르는 죽도에 이른다.
죽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으나 30년전 산을 발파 절개하여 섬으로 되었단다.
능선이 두동강이 난 그곳 병풍바위에서 섬계 마을로 향한다.
강변길을 따라 걷다 무심히 올려다 본 능선엔 방금전 내가 걸어 내렸던
뜀바위를 연결한 원목데크 계단길이 선명하다.
별로 지루함 없이 걸었던 강변길은 스톤 스토리펜션을 지난 얼마후...
버들 강아지가 봄맞이 준비를 하던 구량천 강변길은 끝이 나고
49번 국도를 따라 아스팔트길을 걷게 되자
천반산 휴양림을 지나고 부턴 차츰 지루함이 느껴진다.
역시 아스팔트길은 싫어~
싫어도 걸어야지 어쩌겠나 ?
포장도로의 지루함은 가끔씩 곡선부위
반사경에 비친 내 모습을 셀카에 담는 놀이로 위로삼아
그렇게 걷고 걷다보니...
역시 사람 발길은 무섭다.
그사이 벌써 발걸음은 섬계산장에 도착하고
이내 내 차량만 덩그러니 주차돼 있던
섬계마을 주차장에서 오늘도 또한 보람찬 한나절 산행을 끝낼 수 있었다.
오랫만에 찾은 산행지는 새롭기도 하지만
코스를 달리해서 걷는다면 처음 찾는 산행지나 다름없다.
오늘 천반산이 그랬다.
아울러...
이곳 천반산은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볼 수 있슴에 후손인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다녀가신 흔적은 아래의 공감하트() 꾸욱 .....(산찾사.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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